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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전화 한통'의 채용비리, 당사자만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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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12-27 08:39:56  |  수정 2018-01-02 09: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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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강지은 기자 = "먼지보다 가벼운 그 입 다물라".

금융감독원 노조는 지난 26일 이같은 제목의 성명을 냈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를 겨냥한 것이었다.

금융감독원 채용비리에 연루된 김 회장은 최근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 회장은 2016년도 금감원 신입직원 채용과정에서 당시 이모 총무국장에게 전 수출입은행 부행장의 아들 A씨가 필기시험에 합격하도록 청탁한 의혹을 받아왔다. 김 회장에게서 A씨의 필기시험 합격 여부를 문의받은 이 국장은 A씨가 필기전형 합격 대상안에 들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고는 채용 예정인원을 늘려 A씨를 합격시킨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지난 10월 농협금융 본사와 김 회장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후 김 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김 회장과 김 전 부행장, 이 국장 사이에 대가가 오갔는지 살폈지만 혐의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던 걸까. 김 회장은 무혐의 결과를 받은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년 전 전화 한 통이 '채용 청탁'으로 부풀려져 억울했다", "오해를 씻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함께 일했던 후배 직원 자녀가 합격했는지 정도는 물어봐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그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전화 한 통'이 불러온 파장을 감안하면 이번 발언은 매우 신중치 못한 처사로 보인다.

구속된 금감원 이 국장은 김 회장이 수석부원장으로 있을 당시 비서팀장과 감사팀장을 지냈다. 수석부원장 직속 총무국에 소속된 자리다. 자신이 모신 상관의 '알아봐달라'는 전화가 결코 가볍게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최종 결재권자인 서태종 전 수석부원장도 옷을 벗었다. 채용비리 후폭풍으로 금감원은 임원 13명 '전원 교체'라는 사상 초유의 인사를 단행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김 회장의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에게선 이번 사태나 부하 직원에 대한 미안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모르는 건지 애써 모른 척 하는 건지 말이다. 금감원 노조도 성명을 통해 "전화 한 통에 난리가 난 옛 직장에 대해서는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김 회장을 강하게 규탄했다.

김 회장의 '전화 한 통'으로 촉발된 채용비리와 관련, 당국의 조사가 금융권을 넘어 공공기관, 민간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김 회장의 인식은 우려되지만 채용비리 근절의 단초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가 역할을 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kkangzi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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