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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절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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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1-12 11:08:11  |  수정 2018-01-12 11: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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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피아니스트 조성진(24)의 독주회는 신년 의식이 됐다. 지난해 1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열린 그의 단독 리사이틀은 연초에 마음을 정갈히 다듬는 신년 음악회나 다름없다. 두 해 연속 첫 공연을 고국에서 연 조성진 본인에게도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현재 독일 베를린에 산다.

조성진의 독주회에 새삼 부연할 것은 없다. 청중으로서 매번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음악가와 동행하는 기쁨이 앞선다. 사실상 3부짜리 공연이었던 지난 11일 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리사이틀도 마찬가지였다. 본 공연 2부의 마지막곡인 쇼팽 소나타 3번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앙코르로 내리 들려준 쇼팽 발라드 1번, 2번, 3번, 4번은 최강 한파 속에 피어난 매화 같았다. 조성진이 시(詩)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이 곡을 저돌적인 에너지로 파고들자 이날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2500석을 가득 메운 객석 사이로 훈풍이 불었다. 희고 검은 꽃밭 사이로, 강철나비가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쇼팽 연주가 훌륭했음에도 여운이 짙었던 건 1부에서 들려준 베토벤 소나타 '비창'과 30번이었다. 쇼팽과 달리 베토벤 연주에서 조성진은 힘을 뺐다.

청각장애를 극복한 베토벤은 대표작 '운명' 교향곡처럼 불굴의 의지를 이겨내고 '운명'에 맞선 아이콘으로 통한다. 하지만 후기 작품인 소나타 30번은 같은 작곡가가 썼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다르다. 청각을 잃은 상태에서 작곡한 이 곡은 서정성이 짙다. 베토벤이 지난한 삶을 위로하는 듯하다. 조성진이 앞서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베토벤도 있다. 20대 중반의 청년 음악가는 그 경지를 아는 듯했다.
 
힘을 뺄 줄 아는 이가 진정한 고수로 통한다. 절제의 힘은 강력하다. 더구나 조성진은 한결같다. 절제의 매무새가 단단하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순식간에 쏟아진 환호와 주목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연주에 집중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오후 11시가 다 돼서 끝난 콘서트 이후 로비에 사인회 줄이 길게 이어진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조성진 독주회로부터 신년맞이 지혜를 얻었다. 예술과 예술가는 지친 삶에 위로와 치유의 스펙트럼을 찾아준다. 촛불시위 등 다사다난함을 겪어온 우리에게 그가 보여준 절제의 힘이 매우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갈등과 대립구도가 만연한 대한민국에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가득하다. 이에대한 해법을 조성진이 나름 제시하고 있다.

치유는 운명에 맞서는 것에만 있지 않다. 긴장과 이완을 오가며 힘을 조절할 줄 알아야 평안이 찾아온다. 베토벤 소나타 30번의 다독이는 서정적 선율처럼.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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