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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최저임금 탓하며 '청소 알바 대체'…해법 없나

등록 2018.01.21 12: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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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연세대, 홍익대 청소노동자 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소속 참가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학교 측의 청소경비 인력 구조조정 등을 규탄하고 있다. 2018.01.17.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연세대, 홍익대 청소노동자 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소속 참가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학교 측의 청소경비 인력 구조조정 등을 규탄하고 있다. 2018.01.17. [email protected]

고려대·연세대·동국대·숭실대 등 청소노동자 문제로 갈등
"적립금 쌓은 대학들이 시급 인상 핑계로 꼼수" 반발·투쟁
"대학들 고령자 일자리 이슈에 사회적책임 회피" 비판도
경희대 모델 "대학 본부가 의지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
"대학들 청소노동자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인식 변화 필요"

 【서울=뉴시스】유자비 기자 = "진짜 사장인 학교가 구조조정 철회하라!"

 지난 17일 오후 3시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생회관 앞. 빨간색 조끼를 입은 연세대, 홍익대 등 청소·경비노동자 300여명이 모여 '인원감축 저질 일자리 양산 반대한다'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시도 저지하자' 등의 손팻말을 들고 연신 구호를 외쳤다.

 "진짜 사장인 학교가 구조조정 철회하라!"라는 말은 학교본부한테 책임을 묻는 구호로, 원청인 연세대학교가 구조조정 철회를 결단하라는 뜻이다.

 2010년부터 연세대에서 미화업무를 하고 있는 송모(64)씨는 "지난 여름엔 시급 인상으로 백양관에서 점거 농성을 했는데 올해는 학교가 구조조정을 해 점거 농성을 한다"며 "학교가 정년퇴직한 동료 자리를 채우지 않고 남은 이들에게 일을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학교가 투입한 알바생들도 종일 일하는 근무자들과 손발이 맞겠느냐"라며 "학교가 최저임금을 핑계로 꼼수를 부리고 있다. 대학이 학교가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같다"고 강조했다.

 고려대·연세대·홍익대 등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이 청소·경비노동자 인원 감축에 나서면서 학내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대학 측의 불통을 지적하며 본관 점거 농성까지 들어갔다. 지난해 시급 인상을 요구하는 백양관 점거농성을 해제한 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대학과 청소노동자들 간 노사갈등에는 간접고용 형태에서 비롯된 고용불안 문제가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 측이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동조합 관계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본관 앞에서 '동국대학교-숭실대학교 청소노동자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촉구 및 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1.15.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동조합 관계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본관 앞에서 '동국대학교-숭실대학교 청소노동자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촉구 및 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1.15. [email protected]


 ◇"청소노동자 '알바'로 대체"...대학가 갈등 확산

 올 들어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서는 청소노동자 구조조정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연세대에서는 지난해 말 정년퇴직한 종일제 청소·경비노동자들의 31명의 자리를 단시간근로자로 대체하거나 채우지 않고 있다. 고려대도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들 10명의 자리를 단시간근로자로 대체하기로 했고 홍익대도 올해 미화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청소노동자 4명이 재계약하지 못했다.

 동국대와 숭실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 동국대와 숭실대에서는 지난해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 각각 8명, 11명의 자리에 대해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아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반발을 샀다.

 대학들은 학생 수 감소와 재정 압박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대학들이 수천억씩 적립금을 쌓아두면서도 지난해 시급 인상을 핑계로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항의, 투쟁에 나섰다.

 정부에서도 문제가 불거진 대학들을 방문하며 중재에 나섰지만 갈등은 풀리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11일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려대를, 15일에는 반장식 일자리수석 등이 연세대를 찾아 대학당국 및 청소노동자들과 면담했다. 하지만 학교 측이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소속 연세대 청소·경비 근로자 100여명은 다음날인 16일부터 학교 본관 1층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서울=뉴시스】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11일 서울 고려대학교 자연계클러스터 하나과학관 보건과학대학 학장실에서 고려대 당국자들과 면담하고 있다. 2018.01.11. (사진=청와대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11일 서울 고려대학교 자연계클러스터 하나과학관 보건과학대학 학장실에서 고려대 당국자들과 면담하고 있다. 2018.01.11. (사진=청와대 제공) [email protected]


 ◇해마다 되풀이되는 갈등…"간접고용이 고용불안 야기"

 대학과 청소노동자들 간 갈등은 매년 반복돼왔다. 전문가들은 "간접고용 형태에서 비롯된 고용불안 문제가 깔려있다"고 진단한다.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용역회사를 통한 간접고용 형태로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용하는 사업주와 고용하는 사업주가 일치하지 않는 형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대학 청소용역직 노사관계 실태와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서울 소재 일반 대학 중 청소노동자들을 정규직이나 계약직 형태로 직접 고용한 곳은 가톨릭대·삼육대·서경대·서울기독대·서울시립대 등 5개 대학에 불과했다. 반면 용역회사를 통한 간접고용 형태를 취한 대학은 최소 33곳이었다.

 대학들이 1~2년마다 용역비용을 줄이는 형태로 용역업체를 바꾸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을 겪어야 한다. 게다가 대학이 청소노동자들과 직접 교섭할 의무는 없어 노사 갈등이 장기화된다는 지적이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들의 등록금 수입이 대체로 줄긴 했으나 적립금은 매년 늘고 있고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어렵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대학들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직접고용 대신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형태를 취하면서 피해가 청소노동자들에게 가고 있다. 청소노동자들 고용 문제를 실질 고용주인 학교가 풀 수 없는 형태"라고 분석했다.

 대학들이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청소노동자는 중고령 어르신들의 일자리 문제라는 사회적 이슈도 있는데 대학들이 알바라는 더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바꾼 격"이라며 "모범적으로 좋은 일자리 확산을 선도해야 할 교육기관이 걸림돌이 되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청소용역업체는 '을(乙)'이기 때문에 실질 사용자인 대학들이 책임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대학당국이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등 전향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본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하며 무기한 점거농성에 돌입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1.16.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본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하며 무기한 점거농성에 돌입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mail protected]


 되풀이되는 갈등을 막는 대안으로는 청소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는 등 고용구조를 바꾸는 대학들에 지원 정책을 제공하거나 청소용역 입찰 과정에서 사회적기업이 우대받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안이 꼽힌다.

 일각에서는 경희대 모델을 주목하기도 한다. 경희대는 지난해 국내 대학 최초로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전원을 정규직 채용했다. 다만 경희모델은 산학협력단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는 방식으로 대학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임 연구원은 "경희대 모델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대학 본부가 의지를 보이고 합의안을 도출해냈다는 것"이라며 "다른 대학들은 내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자회사를 통한 모델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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