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령의 BOOK소리]김현 시인 "입술은 행동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시집 '입술을 열면'의 저자 김현 시인이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카페 창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2.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독자들이 시집을 사람처럼 대해줬으면 합니다. 무생물이 아니라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이 읽어주길 바랍니다."
김현 시인은 최근 낸 두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창비)에 대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했다"며 "독자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집이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4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을 펼치면 '조선마음' 연작시가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늘은/반듯이//입춘이라는 단어를/입술에서 떠나보낸다//그게 봄이다//봄에는/꽃을 주는 사람이 되자//마음먹고/꽃이 피지 않는 식물을 산다"('조선마음8' 중)
"옛 남자를 생각한다//가령//낙엽이 멀어졌어/낙엽을 주었구나//옛 남자는 옛 생각을 말한다/불멸이 그것이다"('조선마음6' 중)
"원래 '조선마음'을 제목으로 달고 싶었는데, 시집 원고를 모아 구성해봤더니 '입술'이라는 말을 많이 썼더라구요. 마음보다는 입술이 훨씬 구체적이고 보이는 것이잖아요. 입술은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술을 열면 미래가 나타나고'라고 지었다가 편집자와 상의해서 '미래가 나타나고'를 뺐다.
"여운을 남기기 위해 '입술을 열면' 뒤에 오는 말은 독자들 몫으로 했어요. 시집을 다 읽고 독자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입술을 열면' 뒤의 말을 채워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때서야 완성되는 시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에는 2014년 세월호 침몰사건을 비롯해 사회 현실에 대한 치열하고 담대한 저항이 담겼다.
김 시인은 "세월호 사고를 처음 접했을 때의 슬픔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그 이후에 누군가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타자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어떻게 소중히 바라볼 것인가, 타자와 교감하고 연결됐을 때 발생하는 일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에게 채워지는 것은 무엇인가 등 여러가지 면을 생각해봤습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시집 '입술을 열면'의 저자 김현 시인이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카페 창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2.12. [email protected]
그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매달 동료들과 낭독회를 가졌다"며 "그 때 겪은 일을 갖고 '열여섯번째 날'이라는 시를 쓰게 됐다. 특별히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 사건 이후에 살아 남는 자들의 몫은 무엇일까,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등을 두루 생각해볼 수 있는 시집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시인의 시선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전한다.
총 53편의 시가 묶여 있다. 김 시인은 "시인들이 내는 모든 시집이 단편적인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시집도 한 편의 시처럼 보여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시집 '입술을 열면'의 저자 김현 시인이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카페 창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2.12. [email protected]
"한 번에 쏙 들어오는 것은 아니나 여러 번 보거나 곱씹어 볼수록 무언가가 생각나는 것"을 시만이 갖고 있는 매력으로 꼽았다.
시집에서 디졸브(dissolve, 장면전환기법)라는 영화적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영화적인 문법을 시 안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했습니다. 시를 쓰고 있으나 영화인 듯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A'라는 장면과 'B'라는 장면이 겹쳐질 때 순간적으로 A도 B도 아닌 미묘한 장면이 생깁니다. 몇 개의 장면이 겹쳐지면서 결국 제가 쓰지 않은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김 시인은 출판사 창비에서 운영하는 시 애플리케이션 '시요일'을 통해 매달 독자 사연에 맞춰 시를 추천하고 처방전을 썼다. 지난해 12월 약 200명의 독자들이 사연을 보내오는 등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독자들 사연을 읽으면서 슬프고 우울하지만 희망적이고 싶은,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런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 마음을 풀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시의 역할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저답게 살아가는 시인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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