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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만 나는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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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2-19 08:00:00  |  수정 2018-02-26 09: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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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지성호씨가 지난 14일 서울 뉴시스 본사에서 김현호 상임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8.02.19. kmx1105@newsis.com

트럼프 의회 연설에 초대받아 목발 흔든 탈북자 지성호씨
<김현호의 넛지 인터뷰>

달리는 기차에서 석탄 훔치다 떨어져 한쪽 팔 다리 잃어
목발 짚고 두만강 건너 중국을 관통해 동남아 정글 뚫고 한국행
북한인권운동단체 ‘나우’ 창립해 탈북자 구출운동 펼쳐

【서울=뉴시스】김현호 기자 = 북한인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탈북자 지성호씨(36)는 길지 않은 인생을 그야말로 소설처럼 살아왔다. 북한의 대기근 시대인 1990년대, 열 살 남짓에 이른바 ‘꽃제비’ 소년이 돼 달리는 기차 위를 오르내리며 석탄을 훔치던 그는 기차에서 떨어져 왼쪽 손과 다리를 잃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목발을 짚고도 달리는 기차를 향해 뛰어 오르기를 계속했다. 그러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목발을 짚고 두만강을 건넜다. 그런 몸으로 중국 대륙을 남하해 동남아 정글을 뚫고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서 대학 재학 중 북한인권 운동 단체를 결성해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온 그는 지난달 31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장에 초대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북한 인권의 실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로 부각시켰다. 그 자리서 그는 자신의 분신 같은 목발을 힘차게 치켜들었다. TV 중계를 통해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귀 기울이던 세계의 이목이 그에게, 나아가 북한 인권문제에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성호씨를 만나 이번 미국행과 그의 삶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떻게 미국에 가게 되었나.

“평소 잘 아는 분이 미국에 좀 오라고 했다. 미국에서 열리는 북한인권 행사에 가끔 참여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무슨 행사인지 누구를 만나는지 전혀 몰랐다. 나의 경력과 관련 자료를 미리 보내달라고 해서 좀 큰 행사인가라는 생각만 했다. 미국 가서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연두 국정연설장에 참석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연설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백악관에는 언제 들어갔나.

“미국 도착 다음날 백악관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 전날이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튿날 의사당에서 있을 연두 연설에 초대돼 소개되는 이른바 ‘영웅’들이 모두 왔다. 미국인이 아닌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런데 나보고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짝 긴장돼 있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얼떨떨해 있으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윙크를 해주면서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당신이 겪은 고통을 세계인이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트럼프대통령이 나와 사진을 찍으면서 ‘엄지 척’을 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상이 참 푸근했다. 친척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연설 당일은 어땠나.

“백악관에서 대통령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와 기념사진도 찍고 직원들이 백악관 구경을 시켜주었다. 저녁에는 펜스 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 참모들과 함께 만찬을 했다. 그 자리서 대통령 참모가 ”오늘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서 당신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대통령이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북한인권문제에도 관심이 많다고 강조했다. 2년 전 내가 노르웨이 오슬로포럼에서 행한 연설 장면을 담은 13분짜리 영상을 트럼프 대통령이 다 본 것 같았다. 펜스 부통령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용기가 대단하다“고 격려해 주었다. 만찬 후 의사당으로 이동했는데 일행에 대한 경호가 삼엄했다.”
(미국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은 TV 시청률이 높은 저녁시간에 행하는 것이 관례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올해 연설도 현지 시간 1월30일 저녁 9시, 우리시간 31일 오전11시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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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사당에서 지성호씨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두 국정연설중 자신을 소개하자 일어나 목발을 치켜들고 있다. 2018.01.31.

-의사당에서는 어땠나.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과 각료, 연방대법원 판사들과 장군들 등등 미국을 움직이는 중요인사들이 모두 모인 의사당에 들어설 때 가슴이 먹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를 소개하고 북한 인권문제를 지적할 때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특히 북한에서 우리 형제들이 먹을 게 없어 흙을 먹던 이야기, 나의 탈북 여정, 아버지가 탈북하다 북한 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으로 돌아가신 이야기를 할 때는 온몸이 굳는 듯했다. 그리고 ”아, 마침내 내가 승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북 후 북한 인권 실상을 알리려고 그토록 몸부림쳐 왔는데 이제 미국 대통령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 인권 실상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으니,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목발을 치켜드는 모습은 그날 의사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 했다.

“한국에서는 의족을 써 목발은 계단을 오르거나 힘들 때 가끔 사용한다. 그러나 그 목발은 곧 나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북한인권 관련 행사에서 강연할 때는 가급적 그 목발을 들고 간다. 미국 의사당에서 목발을 치켜들면서 나는 속으로 울면서 외쳤다. “북한은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만 나는 결국 승리했다”라고.”

-의사당 분위기는 어땠나.

“내가 소개될 때 가장 긴 기립박수가 쏟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정 연설이 끝나고 나서는 미국 의원들이 몰려와 악수를 청했다. 다들 ‘감동 받았다’ ‘용기가 대단하다’ ‘북한 인권 실상을 알게 됐다’고들 했다. 의원들과 사진도 많이 찍었다. 행사장을 나오니 일반 시민들이 따라와 함께 사진 찍자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좇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방금 TV에서 본 사람 아니냐’ ‘그게 그 목발이냐’며 몰려왔다. 호텔에 도착하니 ‘이런 스페셜게스트(특별손님)를 모시게 될 줄 몰랐다’며 반색했다. 언론사와 곳곳에서 전화가 너무 와서 전화기를 꺼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후 트럼프 대통령을 또 만났지 않았나.

“국정 연설 다다음 날 귀국하려는데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과 탈북자들과의 만남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만났는데 매우 반가워하면서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대통령은 탈북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탈북 동기와 과정을 물어 보면서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면담은 예정시간을 훨씬 넘겼다. 이번에 백악관에 세 번 들어가고 트럼프 대통령을 세 번 만났다. 앞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우리 대통령과도 북한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일부에서는 트럼프대통령이 탈북자들을 북한 공격에 이용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탈북자와 북한인권 문제에 이토록 관심을 보인 지도자가 있는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과 진정성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관심과 국정연설 등을 통해 북한인권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북한체제의 근본적 문제는 인권말살에 있고 탈북자들은 인권말살의 살아있는 증인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점을 강조하고 있고, 이것이 북한 정권에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다.”

-그날 이후 보름 정도가 지났다. 구체적인 변화를 느끼는 게 있나.

“한국은 물론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의 언론과 인권단체 등에서 많은 연락이 오고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대책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무엇보다 탈북자들이 큰 힘과 용기를 얻게 됐다. 물론 이것이 일시적 분위기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왜 탈북했나.

“나는 함경북도 회령시 세천노동자구에서 태어나 자랐다. 두만강변의 탄광마을이다. 1990년대 대기근이 시작되면서 주물공이었던 아버지가 직장에서 배급을 받지 못하게 됐다. 열세 살 때부터 석탄을 실어 나르는 기차에 뛰어 올라 석탄을 훔쳐 팔아 먹을거리를 구했다. 열여섯 살 때 기차에서 떨어져 왼쪽 손과 다리가 잘렸다. 그후 목발을 짚고도 달리는 기차에 뛰어 올랐다. 어머니가 나의 의족과 의수를 구해 오겠다며 여동생과 함께 중국으로 간 뒤 소식이 끊겼다. 나도 네 살 아래 남동생과 함께 2006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아버지는 나중에 모셔올 생각이었다. 한국에 와서 아버지 소식을 알아보니 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두만강을 건넌 후에는?

“중국 옌벤에서 출발해 라오스 미얀마를 거쳐 태국까지 1만 킬로미터를 지나왔다. 중국 기차 안에서 공안에 붙잡힐 뻔 했지만 정신병자 행세를 해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성한 사람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동남아 정글을 목발을 짚고 지날 때는 완전 탈진해 쓰러졌다. 그때 이런 기도와 다짐을 했다. ‘아, 나는 왜 북한에서 태어나 이렇게 외국 정글에서 허무하게 죽어가야 하나. 만약 여기서 살아난다면 북한 동포들이 더 이상 탈북하지 않아도 되도록 통일을 이루는 데 목숨을 바치겠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나 태국의 한국대사관에 도착했다. 관계자들이 ‘목발 짚고 여기까지 온 탈북자는 처음’이라며 반갑게 맞아주고 한국으로 일찍 보내 주었다. 인천공항에서는 관계자들이 휠체어를 갖고 맞아주어서 눈물이 났다.”

-한국에서의 정착 생활은?

“하나원 교육을 마친 뒤 지방 도시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경제적으로 몹시 힘들었다. 정착 지원금을 탈북 브로커에게 준 탓도 있지만 지원금 자체가 많이 부족했다. 포장마차 등을 하다가 한국에서는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입시 준비를 했다. 1년 정도 공부 해 2009년 28살에 동국대 회계학과에 입학했다가 북한인권운동을 하려면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법학과로 옮겼다. 지금은 대학원 과정에 다니고 있다.”

-북한인권운동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하게 됐나.

“대학 1학년 때 영어 선생님 겸해서 함께 지내게 된 재미교포 선교사가 있었다. 그에게 내가 북한에서 겪은 일이나 탈북 과정,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했더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이나 한국 사람들은 왜 북한을 그냥 두고 있느냐’고 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북한에 들어가 순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마 했다. 그런데 그와 헤어진 뒤 그가 실제로 두만강을 넘어 북한에 들어갔다가 북한당국에 체포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가 로버트 박이다. 로버트 박은 북한에 억류돼 있다 풀려났지만 심한 고문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로버트 박의 일을 보면서 북한 인권운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 2010년 남북한 청년들로 ‘나우(NAUH. Now Action Unity for Human rights)’를 결성했다.”

-‘나우’의 주요 활동 방향은?

“북한인권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탈북자 구출운동을 벌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7년여 동안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작년에는 미국의 하버드 프린스턴 조지워싱턴 대학 등에서 북한인권 강연회를 열었고,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우크라이나의 유센코 전 대통령, 루마니아의 콘스탄티네스쿠 전 대통령 등을 뵙고 국제적 연대를 다지기도 했다. 2016년에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오슬로자유포럼’에서 세계 각국의 인권운동가 300여명 앞에서 북한인권의 실상을 고발했다. 탈북동포 구출운동은 주로 중국내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로 지난 7년 동안 270명을 입국시켰다. 처음에는 1년에 10명 안팎이었으나 작년에는 72명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나우’의 활동이 더욱 탄력을 받으리라 기대한다.”

-탈북자 지원 활동 등을 통해 북한 내부의 변화를 잘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 북한 사회는 어떤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 같다. 물자가 모자라는데다가 중국에 내다팔던 물고기나 광물 등도 제값을 못 받으니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하고 5년이 지났는데도 형편이 더 어려워지니 주민들도 화가 난 것이다. 예전 같으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갈 이야기를 대놓고 해도 보위부원들이 잡아가지를 못한다. 잡아가면 주민 전체를 잡아가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당장 먹고 살기 힘든 마당에 핵과 미사일이 무슨 소용이냐고 한다. 특히 북한의 20~30세대인 이른바 ‘장마당 세대’(배급체계가 무너지고 장마당이 본격화하던 90년대 이후에 성장한 세대를 지칭)들의 불만이 크다. 이들은 한국의 대중문화에도 익숙한, 더 이상 외부세계와 폐쇄된 세대가 아니다. 북한의 미래도 결국 이들의 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상임고문>

 hh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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