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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령의 BOOK소리]"타인에 준 상처는 생각 못해...말에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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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2-22 09: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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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산문집 '한글자 사전'의 저자 김소연 시인이 지난 5일 서울 서교동 '마음산책' 사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2.22. kkssmm99@newsis.com
■김소연 시인, 세번째 산문집 '한 글자 사전'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시를 쓰는 사람이다보니 어떤 낱말의 정확한 뜻에 대해 굶주려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 뜻을 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을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김소연 시인은 최근 낸 산문집 '한 글자 사전'(마음산책)에 대해 "책에 여백이 많다"며 "독자들이 '공책'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만의 사전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 글자'에 담긴 심오한 뜻이 이렇게나 많은가 싶은 책이다.

김 시인은 한국어대사전을 내내 책상 옆에 두고 지내며 기역(ㄱ)부터 히읗(ㅎ)까지 국어사전에 실린 순서대로 이어지는 한 글자들을 자신만의 정의로 풀어냈다.

"우리말을 모두 안 써서 그렇지 정말 많고 다양해요. 표준국어대사전에 한 글자로 된 낱말이 이 책의 5배 정도 있습니다. 제가 뜻을 보탤 필요가 없는 경우나 재미없는 단어를 추려냈는데요. '다 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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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정의라기보다는 해당 글자를 화두로 삼은 산문적 정의다. '감'에서 출발해 '힝'까지 310개에 달하는 '한 글자'를 화두로 섬세하게 삶을 통찰했다.

이 같은 사전적 글쓰기는 10년 전 '마음사전'(2008·마음산책)에서 처음 시도했다.

"사람마다 감정이 너무 다른데, 같은 단어를 쓴단 말이에요. 자신이 '슬프다'라고 말할 때와 다른 사람이 슬픔을 느낄 때랑 차이가 많이 나서 사전적 정의가 필요한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시인은 1993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과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를 냈다.

"시 쓰는 근육만 사용하고 살 때 어떤 한 자세만 오래 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무리 좋다고 하는 자세도 너무 그 자세만 취하고 있으면 몸이 망가지잖아요. 산문은 제 건강을 위한 스트레칭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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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산문집 '한글자 사전'의 저자 김소연 시인이 지난 5일 서울 서교동 '마음산책' 사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2.22. kkssmm99@newsis.com
첫 산문집 '마음사전' 출간 10년을 기념해 이번 책이 나왔다. 계간 '문예중앙'에 2014~2015년 연재한 원고들이 '한 글자 사전' 초고다.

"글이라는 게 매체에 따라 다르게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행본은 잡지가 아니고 '마음사전'처럼 10년 후에도 읽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시의성이 떨어지는 것은 다 뺐고, 완전히 다시 쓴 게 반 이상이 됩니다."

이번 산문집에서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형식으로 자신만의 감성과 가치관을 담았다. 마침표는 마침표가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쉼표임을 잘 아는 시인의 마음이 오롯하게 읽힌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격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모든 걸 가진 자에게서보다 거의 가진 게 없는 자에게서 더 잘 목격할 수 있는 가치이고, 모든 걸 가진 자가 이미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유일한 가치이고, 거의 가진 게 없는 자가 유일하게 잃기 쉬운 마지막 가치이기 때문이다."(''격'·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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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산문집 '한글자 사전'의 저자 김소연 시인이 지난 5일 서울 서교동 '마음산책' 사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2.22. kkssmm99@newsis.com
김 시인은 "사람들이 자기가 상처받은 것만 생각하고 타인에게 상처준 것은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며 "비판을 해도 이유나 근거를 들어 신중하고 정확하게 하고, 그 말에 책임을 진다면 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인의 눈과 머리와 마음에 새겨진 한 글자의 결과 겹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시간, 사람,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또 우리가 놓친 시선과 삶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첫사랑은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다. 첫째도 복수형이 될 수 없다. 첫인상도 첫만남도, 첫 삽도 첫 단추도 첫머리도 두 번은 없다. 하지만 첫눈은 무한히 반복된다. 해마다 기다리고 해마다 맞이한다."('첫'·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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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산문집 '한글자 사전'의 저자 김소연 시인이 지난 5일 서울 서교동 '마음산책' 사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2.22. kkssmm99@newsis.com
"1. 이미 아름다웠던 것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될 수 없고, 아름다움이 될 수 없는 것이 기어이 아름다움이 되게 하는 일. 
2. 성긴 말로 건져지지 않는 진실과 말로 하면 바스라져버릴 비밀들을 문장으로 건사하는 일. 
3. 언어를 배반하는 언어가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시'·242쪽)

김 시인은 "시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표상이 있는데, 그것은 문학사가 만들어낸 대중들이 이해하기 좋은 프레임(사고의 틀, 생각의 범주)일 뿐이고, 어떤 시인이라는 것도 결국은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라마나 영화 속에 가끔 시인이 등장하는데, 내가 아는 시인의 세계하고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며 "시인은 본질적으로 가장 예민하게 인간과 세계를 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떤 프레임이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자신 역시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며 시인이나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왜 시를 쓰고 싶고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언어라는 게 굉장히 주관적인 세계"라면서 "이를테면 이번 책에서 내가 정의내린 것에 독자들이 동의할 수도 있고,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을 해야 자신과 의견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게 정의적 글쓰기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가 프레임에서 꺼내 왔어요. 독자들도 이 프레임에서 꺼내가고 꺼내가는, 언어로부터 그런 연쇄작용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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