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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나나쏭의 기적'- 인도 빈민가를 변화시킨 노래의 힘

등록 2018.03.07 01:33:21수정 2018.03.08 0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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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바나나쏭의 기적’은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노래 선교를 하는 성악가 김재창 월드샤프 대표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 음악가의 열정과 믿음이 꼬질꼬질한 인도 빈민가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8일 개봉. <자료제공=월드샤프> 2018.03.07.

【서울=뉴시스】 ‘바나나쏭의 기적’은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노래 선교를 하는 성악가 김재창 월드샤프 대표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 음악가의 열정과 믿음이 꼬질꼬질한 인도 빈민가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8일 개봉. <자료제공=월드샤프> 2018.03.07.

성악가 김재창의 '바나나 합창단' 감동실화
빈민가에 노래통해 희망 심어주는 이야기

【서울=뉴시스】박상주 기자 =  객석 이곳저곳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손수건을 꺼내들어 눈자위를 훔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멸시받는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이 음악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희망을 찾아가며 변화하는 모습이 먹먹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오는 8일 개봉되는 음악 다큐멘터리 ‘바나나쏭의 기적’(감독 지혜원·송우용) 시사회 현장이었다.

 ‘바나나쏭의 기적’은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노래 선교를 하는 성악가 김재창 월드샤프 대표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 음악가의 열정과 믿음이 꼬질꼬질한 인도 빈민가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언제부터였을까. 불가촉천민들이 살고 있는 인도 푸네의 한 빈민가에 아름다운 노래 선율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합창을 하듯 노래를 하고, 길거리 좌판에서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가 어깨를 씰룩이면서 노래를 하고, 고장 난 자전거를 고치는 아버지와 아들의 입에서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온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사는 인도의 빈민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영화는 인도 빈민들의 암울한 일상과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들의 밝은 모습을 씨줄과 날줄로 번갈아 비춰준다. ‘인간극장’과 ‘KBS 스페셜’, ‘다큐공감’ 등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지혜원 감독과 ‘KBS 독립영화관’, ‘현장르포 제3지대’ 등을 만든 송우용 감독의 내공이 묻어나는 화면들이다.

 영화의 ‘씨줄’을 구성하는 건 천민들의 고단한 일상이다. 좌판에서 생선을 파는 부부와 밤엔 건물경비, 낮엔 청소를 하는 아줌마, 건축 공사장의 날품팔이 아저씨 등의 힘겨운 나날이 스크린을 채운다.

 영화의 ‘날줄’은 노래로 채워진다. 김 대표는 인도 빈민가의 아이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든다. 학교를 갔다 오면 부모님의 일을 돕거나 돈을 벌기 위해 나가는 어린이들을 설득해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부모님 생선 파는 일을 돕는 신두자(11)와 가수가 꿈인 라훌(12), 밤낮으로 일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돈 생기는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스뚜띠(8) 등이 합창단의 멤버들이다. 도레미가 뭐냐고 물을 정도로 노래를 배워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김 대표는 “아이들을 음악가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노래를 가르친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노래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별명은 ‘앵그리 버드’다. 연습 때 결석 혹은 지각을 하거나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엄하게 나무라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노래 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학교 성적까지 하나하나 챙긴다.

 그러나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노래 연습을 하러 온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가정방문을 통해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를 설득하는 모습에선 따스한 선생님의 모습이 물씬 풍겨 나온다.

 김 대표는 어린이들 뿐 아니라 부모님들에게까지 노래를 전파하는 시도를 한다. 부모님들은 사람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노래를 배우라고 권하는 김 대표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무엇보다도 생업에 정신이 없는 그들에게 노래는 사치일 뿐이었다. 노래를 부른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빵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 김재창 대표는 “아이들을 음악가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노래를 가르친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노래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사진제공=월드샤프> 2018.03.07.

【서울=뉴시스】 김재창 대표는 “아이들을 음악가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노래를 가르친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노래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사진제공=월드샤프> 2018.03.07.

그러나 김 대표가 전파하기 시작한 노래는 언 땅을 녹이는 봄바람처럼 서서히 마을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김 대표와 어린이들의 공동 설득작전에 넘어간 부모님들이 하나 둘 김 대표의 노래 교실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마침내 김 대표는 어린이와 부모님들이 함께 하는 합동 콘서트를 기획한다. 그는 “콘서트를 잘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사람들을 독려한다.

 김 대표는 생전 노래 공부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빈민들로 합창단을 구성한다. 악보는 고사하고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노래를 가르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가게를 열어야 한다고 빠지고, 아프다고 빠지고, 출근을 해야 한다고 빠지고, 도대체 노래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결석률이 높았다.

 노래는 치유다. 노래는 희망이다. 또 어떤 이들에게 노래는 가장 간절한 기도이기도 하다. 부모들이 김 대표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느새 “노래를 하다보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행복해 진다”라고 고백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그들이 무대에 서는 날이 닥쳤다. 한껏 치장을 한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무대에 오른다. 스뚜띠의 엄마 메리는 솔로 곡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감동적으로 소화해 낸다.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손을 잡고 ‘Mother of Mine’을 부르며 눈물을 글썽인다. 수렁에서 건진 천상의 화음이었다. 길거리에서 짓밟히고 무시당하던 불가촉천민들이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으로 우뚝 선 것이다.

'바나나'는 힌디어로 '세우다', '변화시키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 ‘바나나쏭의 기적’은 노래를 통해 다시 일어나는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나나쏭의 기적’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셰필드다큐페스티벌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작품이다. 개봉 전부터 해외 공영 방송사들에 판매되기도 했다.

‘바나나쏭의 기적’에 주인공으로 나온 김 대표는 원광대 음대와 이탈리아 치마로사 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이탈리아 나폴리 존타 콩쿠르(1993년), 벨리니 콩쿠르(94년), 리골레토 콩쿠르(94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95년 귀국 후 여러 굵직한 오페라 및 콘서트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빈민가 출신 80여 명으로 구성된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을 창단해 지휘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 이어 인도에서 합창단을 지도하고 있는 김 대표는 “가난과 질병뿐 아니라 소외감과 무력감으로 절망에 빠져있던 아이들에게 노래로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수확” 이라고 말한다.

 과연 인도 빈민가 가족들의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합창단 도전기 ‘바나나쏭의 기적’은 한국 스크린 나들이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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