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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령 BOOK소리]정여울 "트라우마가 말랑말랑해진다, 매일 글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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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4-08 06:06:00  |  수정 2018-04-09 13:34:47
작가 정여울, 에세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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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의 정여울 작가가 지난 달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4.05.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 신효령의 'BOOK 소리'

누군가가 '잘 지내느냐'고 묻는다. 여기에 '잘 지내지 못한다. 괜찮지 않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문학평론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여울씨가 펴낸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민음사)는 애써 괜찮은 척 했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정씨는 "우리가 다 괜찮다고 말하는 동안 놓쳐 버린 아픔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며 "'괜찮다'고 말하는 게 방어 기제"라고 말했다.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힘드니까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괜찮다'고 말하면서 진짜 감정들이 억압되고 있다. 이것이 인생의 어느 순간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지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이다' '괜찮다고 말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공통적으로 힘들 때 힘이 되는 글귀로 손꼽힌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해도, 시간이 지나도 안 괜찮아질 때 진짜 문제다. 아픔을 치유하려면 그저 '괜찮다'고 말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표현하지 못했을 때 스트레스 수준의 고통이었던 것이 트라우마로 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 상처도 완전히 안 괜찮아질 상처가 더 많아요. 다 괜찮아지는 게 아니고, 안 괜찮아지는 게 훨씬 많잖아요. '이 상처가 안 괜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상처를 좀 더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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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스위스 심리학자인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심리학에 푹 빠져 살았다.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심리학'이라는 안경을 쓰고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심리를 들여다 봤다. 그녀를 매혹시킨 주인공은 어딘가 모르게 자신과 닮은 상처를 지닌 이들이었다. 이 상처를 들여다보며 뛰어난 필력으로 따뜻한 감성을 더했다.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지 10년이 넘었다. "제가 내성적인 성향이라 그런 사람들하고만 친했는데,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바뀌어갔습니다. 강의에서 심리학 이야기를 조금만 해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눈을 반짝거리면서 들어요. 심리학이 사람 마음을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에 귀기울여 주는 것 같아요. 실용화된 심리학보다는 인생을 차분히 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에게 적용해온 심리학 이론에 문학의 감동을 더하면서 느낌은 새롭고 여운은 강해졌다. 에세이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트라우마'다.

"상처를 피하지 않아야 치유할 에너지도 나옵니다. 그런 기쁨을 여러분도 같이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 또는 극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가서 위로해주고 싶고, 고쳐주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서 우리 안에 상처에 대한 면역력, 자기 치유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것이 심리학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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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의 정여울 작가가 지난 달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4.05. suncho21@newsis.com
서문에서 어릴 적 트라우마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한 번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지 않는 엄마, 한 번도 자식을 화끈하게 칭찬해 준 적 없는 엄마로 인해 우리 세 자매는 '그저 해맑게 행복을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인생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마음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말았다. 얼마 전에 깨달았다. 내가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려 20여 년간 방황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이제 내가 나를 입양할 시간임을."

정씨는 "문학 중심의 이야기는 이미 안에 있으니까 내 이야기를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쓰는 과정에서 엄청 아팠다"고 고백했다.

"부모님이 저한테 많은 것을 희생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모님이 준 상처는 쓸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이제는 이해해줄 것 같았어요. 부모님을 믿고 썼어요. 드러난 게 이 정도면 이보다 1000배 정도는 더 아픈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어떤 상처에 대해서, 특히 내성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1000배 정도는 더 아프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쓰면서 가족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엄마 이야기가 맨 처음에 나오니까 '속상해하면 어떡하나'하면서 걱정했어요. 제가 엄마를 아무리 사랑해도 엄마만큼은 사랑할 수 없구나 싶어서 죄송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제 걱정만 하더라구요. 이야기하다보니 좀 슬프네요. 그래서 제 마음이 더 아팠죠. 책을 통해 엄마와 많이 소통했고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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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의 정여울 작가가 지난 달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4.05. suncho21@newsis.com
책 제명처럼 위로가 되는 따뜻함이 있다. 독자들 마음을 어루만지고 때로는 후벼파며 위안과 힐링을 안긴다.

"'연인'의 주인공 '나'는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면서도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어린 백인 소녀가 돈 많은 중국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자신을 냉대하는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주눅 들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큰오빠의 마약과 도박 중독으로 고통받는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중국인 백만장자와 의례적인 만남을 가질 뿐이라고, 자조적인 태도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렇게 미약한 자기애 때문에 정작 '자기 감정'의 소중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후회 없이 사랑하라' 중)

"오늘 '내 인생의 핵심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종이 위에 한 번 써보자. 결코 쉽지 않다. 나를 가장 아픈 방향으로 찌르는 트라우마를 글로 쓰는 것은 바늘로 심장을 찌르듯 쓰라린 고통이다. 하지만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갈 문제다. 그 트라우마가 내 성격, 결점, 진로, 연애, 인간관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함께 써 보자. 당신을 가장 괴롭혀 왔던 바로 그 트라우마가 당신의 부정적 성격을 만든 '주범'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애써 왔던 자신의 '노력'도 글로 써보자. 그 극복과 견딤의 여정을 반추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핵심 트라우마는 이미 치유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바로 그 트라우마가 우리의 심리적 유전자를 결정하는 '밑그림'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완성작은 될 수 없다. 트라우마가 밑그림을 그리는 연필이 될 수 있지만 그림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구도나 색채는 되지 않도록 끝끝내 막아 내는 것, 그것이 자기 치유의 노력이고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우리의 끈질긴 자유의지이니까."('몸으로 행동해야만 삶이 바뀐다' 중)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정씨는 소설가 이효석(1907∼1942) 연구로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으며, 여행 에세이 '내가 사랑한 유럽 톱 10'이 2014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헤세로 가는 길' '마음의 서재' '그림자 여행' '시네필 다이어리' 등 문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인문교양서를 썼다.

정씨는 "표현하지 못한 고통이 병이 된다"며 "트라우마가 치료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질 수가 있는데, 우리가 매일 글을 쓰면 아픔이 말랑말랑해진다"며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원고가 없을 때도 항상 글을 써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하나는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 트레이닝하는 것이구요. 다른 하나는 마음에 남은 응어리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수다로 풀 수 있는 상처가 있고, 글을 써야 풀리는 상처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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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의 정여울 작가가 지난 달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4.05. suncho21@newsis.com
독자들에게 편지를 많이 받고 있다는 그녀는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어떤 분들은 자기 주소를 안 써요. 답신에 부담을 갖지 말라는 뜻인 것 같은데요. 저한테 편지 써준 분들, 질문해준 분들을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분들이 있기 때문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어요. '감사'라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되네요. 독자들 사랑이 저한테는 축복이고, 살아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정씨는 "우리가 글을 쓸 때 항상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며 "일기를 쓸 때조차도 자유롭지 않다. 글쓰기 강연을 통해 그 틀을 깨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책뿐만 아니라 목소리로도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을 통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콘셉트는 '작가 정여울에 대한 모든 것,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듣고, 제가 글을 읽을 때 무엇을 중시하는지 등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강의와는 또다른 재미를 느껴요. 오디오클립이 독자들 삶을 바꾸는 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올 여름 '고흐로 가는 길'을 출간할 예정이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인생과 그림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 책입니다. 반 고흐 그림에는 변화무쌍한 매력이 있습니다. 반 고흐의 삶 속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제가 왜 이렇게 반 고흐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답일 것 같기도 합니다."

정씨는 "쓰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며 "아직 써보지 않은 감성의 글, 쓰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물에 대한 전기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재즈에서 어느 순간 틀에 벗어나서 즉흥 연주를 하는데, 맞추지 않고도 맞을 때가 있잖아요. 제 안에서도 그런 느낌이 있을 때가 있어요. 정말 행복한 순간입니다. 에세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해지지 않은 것, 뭐든지 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매번 다른 형태로 풀어갈지 기대가 됩니다. 그런 에세이의 힘을 최대한 실험해보고 싶어요."

문화부 기자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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