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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모녀비극, '자살자 유가족 관리 시스템 부재'에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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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4-16 06:30:00
지난해 남편 스스로 목숨 끊은 뒤 심적 고통
정황상 신변비관 무게… 유명 강사·고깃집 운영
"여동생 피소는 별개"…자녀 살해 문제도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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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뉴시스】임장규 기자 = 지난 6일 41세 여성과 세 살배기 딸이 숨진 채 발견된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2018.04.09. imgiza@newsis.com

【증평=뉴시스】임장규 기자 = '송파 세 모녀' 사건과 유사한 비극으로 치닫던 충북 증평의 40대와 세 살배기 모녀 변사사건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빚 독촉 등 극심한 생활고보다는 함께 살던 남편과 친정어머니의 잇따른 사망 등 불행한 가정사가 근본적 원인이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2014년 극심한 생활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생계형 복지사각지대'가 아닌 '자살자 유가족 관리 시스템 부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각종 공과금 체납은 사망 전후 추정

 41세 여성 정모씨는 지난 6일 오후 5시 18분께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세 살배기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4개월째 관리비 체납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사무소 직원이 119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결과 정씨의 목과 가슴, 배 부위 등 6곳에는 흉기로 자해를 시도한 '주저흔'이 발견됐다. 침대 위에는 흉기와 수면제 1통, 극약(쥐약) 15봉지(600g)가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9일 정씨에 대한 부검 1차 소견에서 '약물중독'을 사인으로 추정했다. 정씨의 딸은 부패 상태가 심해 추가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정씨 모녀가 지난해 12월에서 올해 1월 사이 숨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검 1차 소견과 최근 행적, 공과금 내역, 우편물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사망 시점이 이때로 밝혀진다면, 모녀가 체납한 관리비와 각종 공과금은 대부분 사망 이후부터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 5개월 치, 6개월 치 밀린 건강보험료(35만7410원)와 가스요금(9만원)도 사망 전후에 체납된 것으로 보인다.
 
 정씨의 통장에는 건강보험료와 가스요금 정도는 낼 수 있는 256만7000원이 남아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4개월 치 밀린 아파트 관리비도 숨진 이후부터 내지 못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생활고보다는 신변비관에 무게

 '남편이 떠난 뒤 심적으로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정씨는 충북 증평의 한 분양전환형 105㎡(약 32평) 아파트에서 보증금 1억2900만원과 월 임대료 13만원을 내고 살았다.

 유동자산으로는 2700만원 상당의 차량 3대(SUV 1대, 트럭 2대)와 상가보증금 1500만원, 통장 잔액 256만7000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채무로는 은행 7곳에서 빌린 1억5470만원이 확인됐다. 자신이 보유한 유동자산을 처분했다면 모두 갚을 수 있는 규모다. 차량 1대를 제외한 다른 재산의 압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씨는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해 9월 이전에 1년 3개월 가량 한국교통대학교 증평캠퍼스 앞에서 이름난 고깃집을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주의 한 유명학원에서 과학·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학원 강사 시절에는 외제차를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기보다는 남편과 친정어머니 사망과 고깃집 운영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심적 고통을 받았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정씨는 유서에 '생활고', '경제적 고통' 등의 말은 남기지 않았다.

 ◇경찰 "여동생 중고차 사기는 별건"

 정씨는 지난 1월 중순 여동생과 함께 사기 혐의로 경찰에 피소됐다. 1200만원 저당권이 설정된 사실을 모르고 정씨 소유의 SUV 차량을 1350만원에 사들인 중고차 업자로부터다.

 정씨 여동생은 1월 2일 언니의 위임장을 받아 차량을 판매한 뒤 3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소 이후에도 경찰과 연락을 유지하며 자진 출석 의사를 수차례 밝혀오다가 이달 11일부터 연락을 끊었다.

 경찰은 체포영장을 신청해 검거에 나섰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씨 여동생이 이미 제3국으로 도피했을 가능성이 있는 데다 강력사건이나 피해금액 5억원 이상의 인터폴 협조 요청 사항도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 여동생의 행방이 계속 묘연하면 기소중지 의견으로 사건을 종결할 방침"이라며 "정씨 모녀의 죽음과는 별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살자 유가족 사회 안전망 필요

 지금까지 드러난 모든 정황을 종합할 때 정씨는 지난해 9월 함께 살던 남편, 친정어머니와 연이어 사별한 뒤 심적 고통을 겪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씨의 남편은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인근 야산에서 발견됐다. 강원도에 살다가 두 달 가량 정씨 집에서 지내온 친정어머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으로 숨졌다.

 정씨는 자살자 유가족이었음에도 어떠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국가복지시스템이 한층 강화됐지만, 자살자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보호망은 여전히 허술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살자 유가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에 비해 8.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자가 남편인 경우에는 16배, 부인인 경우에는 46배에 달한다.

 증평군정신보건복지센터 관계자는 14일 "가장 가까운 가족이 자살을 하면 그 심리적 충격은 이루말 할 수 없이 크다"며 "정씨가 남편과 친정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자살자 유가족 등 위기가정 보호를 강화하는 이른바 '증평 모녀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자살자 가정은 소득 등과 관계없이 위기가정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사회보장급여법을 개정·발의하겠다"며 "자살예방법도 개정해 자살 유가족 관리를 의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의 한 사회복지사는 "정씨는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세 살배기 딸을 숨지게 한 뒤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모두 성인이었던 '송파 세 모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아무 것도 모른 채 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영유아 문제도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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