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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미래를 따라갈 것인가, 미래가 따라오게 할 것인가

등록 2018.07.05 15: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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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싱가포르는 세기적인 북미회담이 개최된 장소로 유명세를 탔다. 싱가포르 정부는 160억 원 가량을 지출했다는데, 모 미디어정보분석회사는 국가 홍보가치와 온라인 광고비 등을 합해 6200억 원을 번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의 끝자락에 있는, 인구 560만 명에 제주도 면적의 3분의1밖에 안 되는 작은 항구도시 싱가포르는 생존전략에 능한 도시국가로 알려져 있다.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표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만1천767달러로 세계 9위를 기록했다.

이번에 북미회담이 개최된 장소로 선정된 배경에도 세계적인 경제선진국이라는 명성과 화려한 물질적 성장, 그리고 미국과 북한 대사관이 모두 존재하는 중립국 이미지 등이 작용했다고 한다. 작지만 강한 나라라는 점에서 강소국으로도 불린다.

미래학계에서는 싱가포르를 다른 이유로 주목한다. 정부가 적극 나서서 국민이 선호하는 미래상을 묻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실행하는 나라여서 그렇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2년부터 단순한 설문조사 방식이 아닌 면대면 인터뷰 방식으로 시민들을 만나 이들이 어떤 미래사회를 원하는지 묻는 ‘우리 싱가포르 대화(Our Singapore Conversation)’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3년 초까지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만 4만7000여명, 660개의 논의 주제별로 시민들은 살고 싶은 2030년 미래사회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눴다. 정부는 성별, 연령, 인종 등이 골고루 포함되도록 참여자의 인구학적 균형을 맞췄고, 오프라인 만남뿐 아니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이들의 의견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첫째 시민들이 미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조사했다는 점이다. 긍정적으로 보는지,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설문 결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것 뿐 아니라 개별적인 의견도 생생하게 보고서에 수록했다. 당시 싱가포르 시민들은 직업능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프로그램 제공, 주택가격의 조정, 사회적 약자들의 보호 정책 등을 요구했다.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은 사회적으로 대립되는 가치를 놓고 누가 어떤 가치를 더 선호하는지 밝혔다는 것이다. 환경보호냐 도로건설이냐, 여유로운 삶 우선이냐 경쟁력 강화가 우선이냐, 외국인 유입의 찬성과 반대, 심지어 동성 결혼의 허용과 반대에 대해서도 물었다. 소득별로, 연령별로 어떤 가치를 선호하는지, 그에 따라 어떤 정책을 원하는지도 분석했다. 저소득 가구의 경우 공공주택에 대한 정책을 우선해서 요구했고, 중간 소득 이상의 가구는 공공보건에 대한 정책을 요구했다. 이는 정책담당자들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된다.

싱가포르의 시민 대화 프로젝트는 미래연구의 목적과 기능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미래예측은 예측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시민과 정부, 기업과 노동자, 시민과 시민을 연결해 당대에 가장 중요한 미래준비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의견을 모으는데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회적 차원의 미래준비는 특정한 소수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 전체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상하고 돌발변수를 예측하며 어느 사회를 지향해서 나아가야 할 바를 정해야 가능하다.

싱가포르의 시민 참여 미래예측 활동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진화를 거듭해 지금은 SGFuture(싱가포르 미래)라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문화와 공동체, 청년을 위한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와 시민이 함께 SGFuture를 만들고 있다.

일례로 2015년11월부터 2016년7월까지 진행한 시민참여 미래준비 활동을 보면 8천300여명의 시민이 121개의 논의 주제를 만들어 선호하는 미래사회를 구상했다. 그 결과, 돌봄사회로 번역할 수 있는 미래(A Caring Community),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정원으로 인식하고 환경보전을 지향하는 미래(A Cleaner, Greener & Smarter Home), 정치적 격변이나 테러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미래(A Secure & Resilient Nation),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미래(A Learning People) 등 네 가지 미래상이 도출되었다. 

이들은 다양한 선호미래상을 제시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미래상을 실현하도록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 격려하고 있다. 누구든 위에 제시된 네 가지의 미래사회를 구현하는데 기여할 프로젝트를 제시할 수 있고, 공적인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 국가예술위원회, 국가문화유산위원회, 국가청년위원회 등이 함께 운영하는 기금(MCCY‘s Our Singapore Fund)은 만18세 이상의 싱가포르 시민이면 누구라도 아이디어 실행 예산 신청을 받는다.

어떤 프로젝트가 실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니 매우 다양하다. 놀이의 미래(The Future of Play)라는 프로젝트는 2016년 80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게임을 통해 공동체 결속을 다지고 사회적 조화를 촉진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목적을 내걸었다. 내일을 위한 직업능력 배움(Learning a Skill for Tomorrow)이라는 프로젝트는 청소년들이 컴퓨터 코딩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우리사회는 어떤가. 국가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다양한 시민의 참여가 있었는가.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형식적으로 의견을 듣는 시늉에 그친 것은 아닌가. 또는 진지하게 했더라도 한 두 번의 예측활동으로 끝나지는 않았는가. 우리 시민들은 바람직한 나라를 상상해보고 만들어가는 데 참여한다고 생각할까.

현재세대의 삶뿐 아니라 100년 쯤 뒤에 탄생할 우리의 미래세대도 고려한 장기적 미래계획에 우리 시민들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있었는가. 단언하면 없었다. 우리도 성숙한 시민들의 역량과 잠재력을 활용해 시민 스스로 원하는 미래사회를 꿈꾸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연대해 바람직한 미래사회를 형성하는데 참여하도록 지원하면 어떨까. 그러자면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의 선호미래상을 묻고 의견을 모아가는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
미래는 우리에게 변화하는 시대를 그저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원하는 사회를 창조할 것인가 묻고 있다.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mail protected]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미래연구 전공) 박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연구위원, 미래창조과학부 X-프로젝트 간사위원, 육군 미래준비위원회 기획위원 역임
2017년 세계미래학연맹(World Futures Studies Federation) 수여 '미래연구자상(Outstanding Young Futurist)' 수상.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2037년 다가오는 4가지 미래(이새, 2017)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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