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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 맞는 의사, 뺨 맞는 간호사…솜방망이 처벌이 조장한다

등록 2018.07.14 12: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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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중 폭행 경험 있는 의료진이 96.5%

가중처벌 조항 있지만 실제론 솜방망이

합의 종용하고 벌금형으로 마무리 빈번

"진료 받아야 하는 다른 환자들도 피해"

"공무집행방해처럼 '무관용 원칙' 적용"

【뉴시스】그래픽 윤난슬 기자 (뉴시스DB)

【뉴시스】그래픽 윤난슬 기자 (뉴시스DB)

【서울=뉴시스】이예슬 안채원 기자 · 이민지 인턴기자= 최근 전북 익산의 한 응급실에서 일어난 폭행사건은 전국의 의료진들을 들고 일어나게 만들었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 등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폭행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진료 공간에서 의료인을 폭행하는 것은 다른 환자들의 치료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진료실서 망치 휘두르고 경찰 체포에도 "죽이겠다" 협박

 지난 1일 익산에서 자신을 진료해 주던 의사를 무차별 폭행한 40대 남성은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도 "교도소에 다녀와 널 찾아 죽이겠다"며 협박을 했다. 당시 상황을 담은 폐쇄회로(CC)TV 화면이 공개되면서 의료업계 종사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지난 6일엔 강원 강릉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조현병 치료를 받아오던 환자에게 주먹으로 목, 머리, 어깨 등을 구타당했다. 살인 전과로 인해 보호관찰중이던 이 환자는 다른 환자를 진료 중이던 의사에게 가방에서 망치를 꺼내들고 마구 휘두르기도 했다.

 뉴시스 취재 결과 지난달 서울 성동구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20대 여성 간호사가 60대 입원환자에게 뺨을 맞은 일이 있었다. 환자의 호출에 간호사가 즉각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홧김에 폭행을 한 것이다. 상해가 크지 않아 경찰 수사 단계로 넘어가지는 않았고 병원 측은 해당 간호사에게 감정노동휴가를 쓰게 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응급실과 외래진료실에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위협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4월부터 자체적으로 폭언·폭행금지 포스터를 제작해 주취자가 많은 응급실에 부착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의료진 53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병원에서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폭언, 폭력, 협박 등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의료진은 무려 96.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연 1~2회 경험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47.8%로 가장 많았지만 '거의 매일'이라고 답한 사람도 1.5%였고 '매 주 한건 이상'(4.0%), '매달 1회 이상'(10.1%) 폭력을 경험하는 의료진도 적은 수가 아니었다.

 폭언이나 폭행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는 '진료실 안'(64.6%)이었다. 그 뒤를 응급실(22.2%), 환자대기실(10.5%) 등이 이었다.

 ◇가중처벌 규정 있지만…솜방망이 처벌 대부분

 응급의료법 제12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폭행·협박·위력 등으로 응급의료 종사자의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이송·응급처치 또는 진료를 방해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 법원의 판결은 이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 3월 광주지법은 응급실 의사가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만취 상태에서 폭행한 60대 남성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익산=뉴시스】강인 기자 = 지난 1일 전북 익산시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임모(46)씨가 의사 A(37)씨를 폭행한 뒤 제지 당하고 있다. 2018.07.06 (사진=독자 제공)kir1231@newsis.com

【익산=뉴시스】강인 기자 = 지난 1일 전북 익산시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임모(46)씨가 의사 A(37)씨를 폭행한 뒤 제지 당하고 있다. 2018.07.06 (사진=독자 제공)[email protected]

2016년에는 과대망상 및 피해망상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병원장을 흉기로 위협한 뒤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사건이 있었지만 인천지법의 판결은 징역 8개월이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8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열린 규탄집회에서 "현재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는 진료 중인 의료인 폭행 행위에 대해 형법상 폭행의 경우보다 더욱 가중해 처벌하도록 하는 법 규정들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보건의료인에 대한 폭력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최 회장은 "의료기관 내 폭력에 대한 사회의 관용적이고 미온적인 태도와 피해자와의 합의 종용 혹은 벌금형으로 마무리되는 사법기관의 안이한 대응에 경종이 울리기를 염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협 등은 의료인 폭행이 단순히 개인의 폭행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까지 피해를 입게 되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강화된 법 적용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범의료계는 의료기관 내 경찰 상주 인력을 마련하고 특정범죄가중법 및 특정강력범죄법에 보건의료인에 대한 폭력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버스기사 폭행이 문제가 되면서 운전 기사를 위한 차단막이 설치됐고 특가법이 적용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며 "100% 실효성이 있을 순 없겠지만 법 강화와 홍보로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법학 전문가들도 의료인 폭행을 더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는 "공무집행 방해를 엄격히 처리하는 것처럼 의료 현장, 소방 현장 등에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며 "실제로는 벌금형에 그친다면 법이 강화되더라도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병원에도 의료인을 폭행했을 때 엄벌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부착하고 의료진 폭행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시간대에 청원 경찰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다"며 "폭행이 발생하면 관할 경찰서에서 4분 내에 현장에 도착해 진압할 수 있도록 신고시스템이 잘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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