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老스님 목숨 건 단식 23일째…"늙은 몸이 무얼 못하랴"

등록 2018.07.12 17:48:43수정 2018.07.13 09:17:5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87세 설조스님, 지난달 20일부터 단식농성 돌입

4평 남짓한 농성장 두 곳…자원봉사자들 불침번

"피로하지만 아직은 생각하고 말할 기력 있어"

"엊그제 단식 시작한 듯…'내일'이란 기약 없어"

"살아있는 동안 조계종 변화 보기 힘들 것 같아"

"조계종 어른들 자격 온전히 갖추고 거듭나길"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천막에서 설조스님이 종단 개혁을 요구하며 23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8.07.12.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천막에서 설조스님이 종단 개혁을 요구하며 23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8.07.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1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 입구는 기도를 드리려는 신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곳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우정총국 앞은 플래카드로 어지러웠다. '조계종 개혁이 사회개혁이다', '불교를 폄훼하는 파계승은 물러나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설조스님(87)의 단식장이 마련된 곳이다.

 '설조스님 단식장'을 가리키는 안내푯말을 따라 올라간 곳에는 4평 남짓한 크기의 농성장 두 곳이 마련돼있었다. 한 곳은 설조스님의 단식장이고 다른 한 곳은 자원봉사자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한 자원봉사자는 "매일 2~5명 정도가 돌아가며 하루 동안 이곳을 지킨다"면서 "종로경찰서에 스님에 대한 신변 보호를 요청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자원봉사자끼리 밤마다 불침번을 서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두 농성장 가운데 자리한 안내판에는 주요 언론사의 제보 내선 번호가 적혀있었다. 농성장을 찾는 이들에게 방송사에 취재요청을 해달라는 목적이었다. 한 신자는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여기는 계속 전화를 안 받는다"며 주변 이들에게 취재요청 전화를 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방명록과 조계종단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방명록에는 160여 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공동대변인인 도정스님은 "설조스님의 단식이 시작된 지난달 20일부터 수사촉구 서명운동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2000여 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전했다. 신자 2~3명은 간간이 와서 서명운동을 하고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김현숙(59·여)씨는 "스님이 걱정돼 왔다"며 "설조스님의 건강은 물론 종단개혁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설조스님의 단식 농성장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법복을 입은 스님들은 물론 일반 신자들도 출입이 자유로웠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2018.07.12.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2018.07.12.   [email protected]

4평 남짓한 단식장은 단출했다. 500㎖ 생수 묶음이 곳곳에 있었고 얇은 이불과 조그만 베개 등 침구류가 고이 개어져 있었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모기 퇴치기도 한켠에 자리했다.

 중앙에 앉아 방문객을 맞은 설조스님은 "목소리가 작을 수 있다"며 옆에 자리한 마이크를 잡았다. 스님은 "몸은 피로하다"면서도 "아직은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기력은 있다"고 했다.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 등의 비위 등을 폭로한) MBC PD 수첩 보도 이전에도 조계종에 대한 비판이 있어왔는데 당시에도 교단 최고 어른들은 침묵을 지켰고 이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번 보도 이후 해인사의 한 젊은 스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참회 기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늙은 몸이 무엇을 못하랴'는 생각에 단식농성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농성장은 차량 통행량이 많은 도로가 바로 옆이다. 스님은 "밤낮이 시끄러워 잠들기 어렵다"며 "밤 11시께 잠이 들면 새벽 5시에 일어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정진한 뒤 사람들을 만나고, 낮 12시 이후 휴식하고 다시 대담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식 20일이 넘었다는데 바로 엊그제 단식을 시작한 것 같이 매일매일이 쉬 지나간다"며 "'내일'이라는 기약 없이 하루를 살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2018.07.12.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2018.07.12.   [email protected]

설조스님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조계종의 변화는 보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종국에는 조계종 어른들이 승려자격을 온전히 갖추고 신도들이 믿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설조스님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불국사 주지, 법보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다. 조계종의 현 체제를 구성한 1994년 종단개혁 당시 개혁회의 부의장을 맡았다. 단식 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찰 여래사의 회주로 있었다.

 조계종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0월 전임 자승 총무원장의 각종 비위 의혹 등이 제기됐고, 신자와 스님들이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해왔다. 올해는 MBC 'PD수첩'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인 설정스님의 폭력과 여성, 재산 문제와 교육원장 현응스님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했다.

 설조스님은 지난달 20일 조계종 정상화를 조건으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와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모임은 이날 오후 7시 조계사 앞에서 '불교개혁을 위한 촛불법회'를 연다. 오는 14일 오후 5시에도 같은 장소에서 집회가 예정돼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