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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익산 쌍릉 인골, 백제 무왕일 가능성 더 높아졌다

등록 2018.07.18 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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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익산 쌍릉 대왕릉 출토 인골 분석 결과 공개 기자설명회가 열린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출토 인골과 목제 인골함, 2018.07.18.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익산 쌍릉 대왕릉 출토 인골 분석 결과 공개 기자설명회가 열린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출토 인골과 목제 인골함,  2018.07.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전북 익산의 쌍릉이 백제 무왕의 대왕릉이라는 설을 풀 수도 있는 사람뼈가 나왔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 사적 제87호 익산 쌍릉에서 발견된 인골에서 남성 노년층 신체특징과 병리학적 소견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쌍릉은 백제 말기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은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이라고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 이번 인골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무덤의 구조와 규모, 유물의 품격, 시대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대왕릉의 주인을 무왕으로 보는 학설은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익산 쌍릉, 일제 강점기

익산 쌍릉, 일제 강점기

백제 무왕 대왕릉설에 무게를 두는 근거로 현실 길이 378㎝의 왕릉으로 최대 규모라는 점, 공력을 많이 들여 제작하는 1장짜리 석재과 통돌 관대를 사용했다는 점, 7세기 중반 왕족이 사용했다는 당나라 문헌에 적힌 허리띠 장식 유물이 발견됐다는 점을 들었다.
 
익산 쌍릉 유골함

익산 쌍릉 유골함

쌍릉의 존재는 '고려사'에서 처음 확인됐다. 고려 충숙왕 때인 1327년 도굴됐다는 사건기록도 있다. 당시부터 고조선 준왕이나 백제 무왕의 능이라는 설이 있었다.

1917년 조선총독부는 쌍릉을 며칠 만에 발굴하면서 백제 말기 왕릉 혹은 그에 상당한 자의 능묘임을 확인했다. 공식기록으로는 1920년 고적조사보고서에 남은 13줄의 내용, 사진 2장, 도면 2장이 전부다.

익산 쌍릉 인골, 접합부위

익산 쌍릉 인골, 접합부위

연구소는 지난해 8월부터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 사업으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익산시와 공동으로 쌍릉 발굴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석실 끝부분에서 인골 조각이 담긴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100년 전 일제가 발굴하면서 다른 유물들은 유출하고 이는 꺼내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이 인골자료가 무덤 주인과 연결된다면, 백제 무왕의 능인지를 결정하는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고고학,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물리학 등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해 인골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의 수종 등을 정밀 분석했다.

익산 쌍릉 인골, 골절

익산 쌍릉 인골, 골절

102개 조각으로 남은 인골을 법의인류학적으로 분석한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이우영 부교수는 유골함의 뼈조각 중 중복되는 뼈들이 없어 하나의 객체이고 성별은 남성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여성의 타원형과는 다른 삼각형 모양 팔꿈치 뼈, 평균 남자 넙다리뼈 길이(80㎜)와 비슷한 넙다리뼈(81㎜) 길이 등이 근거다. 

 또 온전한 형태로 출토된 목말뼈의 경우 한국 남성 목말뼈 관련 논문에서 54×40×32㎜ 기준보다 높으면 남자로 판단하는데, 출토된 목말뼈가 이보다 높아 유골의 주인은 남성이라는 설명이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익산 쌍릉 대왕릉 출토 인골 분석 결과 공개 기자설명회가 열린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우영 카톨릭의대 교수가 출토 인골에 대한 법의인류학적 분석 결과 등을 발표하고 있다. 2018.07.18.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익산 쌍릉 대왕릉 출토 인골 분석 결과 공개 기자설명회가 열린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우영 카톨릭의대 교수가 출토 인골에 대한 법의인류학적 분석 결과 등을 발표하고 있다.  2018.07.18. [email protected]


 
익산 쌍릉, 관재

익산 쌍릉, 관재

'삼국사기'는 무왕을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묘사했다. 639년 작성된 '미륵사지 서탑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대왕폐하'로 불린 기록도 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익산 쌍릉 대왕릉 출토 인골 분석 결과 공개 기자설명회가 열린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출토 인골과 목제 인골함, 3D 복제뼈가 전시돼 있다. 뒤의 사진은 유골이 출토된 쌍릉 대왕릉 내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 익산 쌍릉 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에서 남성 노년층의 신체 특징과 병리학적 소견을 확인하고 백제 무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2018.07.18.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익산 쌍릉 대왕릉 출토 인골 분석 결과 공개 기자설명회가 열린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출토 인골과 목제 인골함, 3D 복제뼈가 전시돼 있다. 뒤의 사진은 유골이 출토된 쌍릉 대왕릉 내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 익산 쌍릉 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에서 남성 노년층의 신체 특징과 병리학적 소견을 확인하고 백제 무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2018.07.18. [email protected]

이 교수는 "쌍릉 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은 남성이고 평균연령을 추정하면서 60대라고 말하지만, 당시 평균수명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에 당시 연령을 감안해서 노령에 속하는 분으로 판단했다"며 "키는 162~170㎝로 당시 상황을 감안해 비교적 큰 키라고 추정했다. 병리적 소견으로 퇴행성 질환을 가진 나이 든 분이고 고칼로리 식이를 한 분으로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남성 노년층에서 발병하는 등과 허리가 굳는 증상인 광범위 특발성 뼈과다증, 다리와 무릎 통증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옆구리 아래 골반뼈에 숫자 '1' 모양으로 골절됐다가 치유된 흔적이 있다. 뼈가 어긋나지 않아 타격이 아닌 낙상 때문으로 판단된다. 치료기간이 3개월 정도 돼 직접적인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익산 쌍릉

익산 쌍릉

추출한 콜라겐의 탄소 안정동위원소 분석으로 벼, 보리, 콩 등의 섭취량이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질소 안정동위원소 분석으로는 어패류 등의 단백질 섭취 가능성도 확인했다.

가속 질량분석기(AMS)를 이용한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보정연대가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됐다. 이로써 인골 주인은 7세기 초중반 중 어느 시점에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뼈가 심하게 부식돼 유전자 분석은 쉽지 않다. 유재은 박사(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는 "유전자 분석을 위해 유전자를 증폭할 수 있고 샘플로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한데 현장을 가서 봤을 때 뼈가 파편으로 됐고 부식도 심하고 굉장히 오염됐었다"고 전했다.  

유전자 분석 연구원들이 소량의 샘플로 동위원소 분석과 유전자 분석을 했으나 증폭 과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전자 분석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익산은 화강암 산지로 유명하다. 석실 재료는 약 9㎞ 떨어진 함열읍에서 채석한 돌로 추정된다. 수령이 400년 이상으로 알려진 관재(棺材)는 늦어도 7세기 전반 이전에 벌목된 나무를 가공했다. 목관은 최고급 건축·가구재인 금송으로 제작했다. 이번에 발견된 유골함은 잣나무류 판자로 만들었다.

최신 공학기술이 반영된 이번 연구에서는 뼈의 3차원 입체 모형화와 3차원 입체 프린팅을 통해 여러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디지털 자료도 구축했다.

600~641년 무왕의 재임 기록으로 보아 10대나 20대에 즉위한 경우 무왕의 사망 연령이 남성 노년층으로 추정되는 쌍릉의 인골 추정 연령과 비슷하다. 사망 시점이 7세기 초반부터 중반 즈음이라는 인골 분석 결과는 익산을 기반으로 성장해 같은 시기에 왕권을 확립한 백제 무왕 무덤이라는 역사적 가능성을 한걸음 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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