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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시끄럽게 하지 말자"던 서울대, '발전적 소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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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7-21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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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이 시점에 이야기할 만한 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총장 후보가 확정된 상태에서 학교를 괜히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네요"

 서울대 최종 총장 후보로 선출됐던 강대희 의과대학 교수의 성희롱·성추행 및 논문 표절 의혹 등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면서 이 학교 관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답변이다. 교수만 20여명을 접촉하고 때론 연구실까지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외부에 서울대의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겠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뉴시스의 잇따른 단독 보도로 논란이 불거지고 총장 후보가 자진 사퇴한 지금, 취재를 거부하던 이들의 예견대로 학교는 다소 '시끄러워졌다'. 선출 과정에서 검증을 어떻게 했느냐는 학교 안팎의 지적과 함께 새 총장 후보를 뽑는 방식을 두고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우선 박찬욱 교육부총장의 임기를 연장해 총장 직무대행을 하는 방안을 교원인사위원회를 거쳐 확정했다. 박 부총장은 새로운 총장이 선출될 때까지 총장 직무를 대행하게 된다. 서울대에는 빠른 시일 안에 총장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이에 강 교수의 의혹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과, 총추위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종전 후보들을 재검증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대립하고 있다.

 총추위가 유지된다 해도 종전 선거에서 선출됐던 5명의 후보 중 나머지 4명을 대상으로 검증을 다시 할 것인지, 아니면 후보 자체를 다시 선출할 것인지도 쟁점이다.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정보가 전혀 없었던 학생들도 분노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는 '개교 72년만에 최초로 학생이 참여한 총장 선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그 같은 의미 부여가 무색할 만큼 총장 후보 검증 과정에서 학생들은 배제돼 있었다.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한 어른들만 있을 뿐 학생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투명한 방식으로 새로운 총장을 선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시끄러워질 일이면 시끄러워져야 한다"며 학생 참여를 더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서겠다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다양한 학내외 단체들이 너도나도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총장 선출 방식을 위한 여론을 조율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막막해했다.

 하지만 이는 입 다물고 있던 구성원들이 조금씩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처음 취재 협조를 요청했을 때 "지금 말한다고 이미 다 정해진 총장이 바뀌겠느냐"고 입을 다물었던 이들은 의혹이 보도된 후 '변화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고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지금 학내 구성원들은 비로소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맞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학내 구성원들을 주저하게 했던 '시끄러움'이 학교 안팎을 뒤덮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많은 이들이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내부에 눌러왔던 목소리들이다. 모두가 만족할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학교 공동체 초유의 위기를 걱정하는 다수 구성원들의 '진짜 목소리'를 경청하고 수렴할 기회가 마련됐다. 이제 서울대는 이 소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발전적으로 승화시켜야 할 시점이다.

 whynot8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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