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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전 국회의장 특별기고 - '광장과 밀실 사이, 그 아득한 심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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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7-26 15:57:28
같은 날 세상 떠난 두 사람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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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동민 기자 = 김형오 전 국회의장life@newsis.com
김형오(전 국회의장, 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최인훈과 노회찬. 한 주의 시작일인 7월 23일 월요일. 오전 10시를 전후해 두 사람은 세상과 작별했다. 이 소식을 나는 그날 점심에야 알았다.  충격이었다. 깊지 않은 인연이지만 나에겐 생각의 점·선·면을 키워줬던 분들이다. 선약이 잡혀 있어 하루에 한 분씩 조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염천에 검정색 양복을 이틀간 입었다.

 최인훈: 이념의 지표를 세우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다  화요일에 찾아간 최인훈 선생의 빈소는 아직 조용했다. 방명록에 한 줄 남겼다.  “우리 시대 이념의 지표를 바로 세우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신 분.”(7/24)  정말 그랬다. 적어도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엔 선생의 '광장'을 읽지 않고서는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선생이 제시하고 정의 내린 ‘광장과 밀실’은 많은 것이 흐릿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던 20대의 나에게 화두였고 지표였다. 내 궁색한 청춘의 지평을 열어준 문이었고 창이었다.  '광장' 이후 나는 한동안 선생의 소설에 매료돼 살았다. '회색인'을 통해 백색과 흑색의 경계 지대를 은밀히 더듬으며 탐닉했다. '구운몽', '총독의 소리' 등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예리하게 해부하고 정확하게 짚어내는 그의 작품들에 몰입했다.

 작중 인물들과 더불어 고뇌하고 번민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밀실’이 나의 작은 뇌 안에서 크게 자리 잡아갔다. 그때 막걸리 몇 잔에 취기가 오르면 “최인훈은 당대 최고의 정치사회학자다!”라고 떠들어댔던 기억이 선연하다.  동아일보사 신동아에서 잠깐 기자 생활할 때 선생을 한두 번 뵌 적이 있다. 원고 청탁 때문이었으리라. 존경하는 작가 얼굴을 보며 몇 마디 나눈 대화가 초년생 기자로선 큰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정치권에 와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책, 좋아하는 책을 한 권만 꼽으라면 '광장'을 선택하곤 했다. '백범일지'를 들까도 했지만, 국회엔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 차별화하려는 뜻도 내심 있었다. 몇 해 전 월간조선에서 ‘우리 시대의 고전’을 청탁했을 때도 나는 원고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광장'은 1960년대 벽두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새벽 4시의 사이렌 소리처럼 잠든 의식을 뒤흔들어 깨우며 등장했다. 전율 그 자체였다. 내 청춘의 독서, 그 맨 윗줄엔 '광장'이 있다.”

 글이 실린 월간조선을 편지와 함께 최인훈 선생께 우송했더니 선생은 최신판 '광장'에 손수 사인을 해 보내주셨다. 식사 자리에 모시려 했지만 건강이 여의치 않다며 후일을 기약하셨다.  각설하고, 빈소에서 몸이 불편한 사모님이 아드님 윤구씨와 함께 맞아주셨다. 건강 상하시지 않기를 바라며 막 헤어지려는데, 음악 칼럼니스트인 윤구씨가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한다. 

 “제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에 대해 글을 쓰려는데 아버님께서 ‘참고삼아 보라’며 주신 책이 바로 '술탄과 황제'였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존경하는 대작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칼럼 집필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 내 책을 건네주셨다니! 아, 졸저가 최인훈 선생에게 인정받았구나! 너무나 고맙고 감격스러워 윤구씨 손을 다시 한 번 잡았다.

 “난 이제 정치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지만 혹여 도움 될 만한 일이라도 있으면 서슴지 말고 연락 주세요.”  내 책 속에 등장하는 오스만 제국 예니체리 군악대(메흐테르)에서 터키 군악대의 행진곡풍 리듬이 특징인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계하신 선생의 섬세한 지성에 새삼 감탄한 순간이었다.

 최인훈 선생님, 감사합니다. 불멸의 작품과 예술혼은 언제까지나 길이 빛날 것입니다. 광장과 밀실을 초월한 그곳에서 부디 영면하소서.

 노회찬: 죽음으로 정치 개혁의 불씨를 살리다  “당신의 죽음은 모든 정치인을 대속(代贖)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개혁되지 않는다면 이 나라 정치인 모두가 죽게 될 것입니다.”

 (7/25)  수요일 오후, 노회찬 의원 빈소가 마련된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면서 든 생각이다. 방명록에 작별 인사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막상 문상객 줄이 만만찮게 길어 이름만 적었다.  나는 이 나라 정치 적폐의 핵심은 진영 논리가 낳은 억지춘향식의 보혁(保革) 대결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만큼은 달랐다. 내 눈에 비친 그는 제대로 된 진보 정치인이었다. 심지는 굳건했지만 사고는 건전했다. 비판을 하되 적대적이 아니었고, 물러서지 않았지만 상대를 모욕하지는 않았다. ‘깨인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나라의 앞날과 정치 개혁을 가로막는 편갈이식 보혁 대결에 진절머리가 난 터라서 노 의원 같은 분이야말로 정당 개혁과 정치 발전의 적임자라고 여겨왔다.

 그런 그가 갔다니, 너무나 아쉽고 마음 아프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했을까. 절대로 목숨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클린 정치인의 상징이었던 그는 한순간의 잘못과 거짓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는 지혜로웠지만 자신에게는 약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그래서 더 슬프고 안타깝다. 기성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그에게 깊은 빚을 진 심경이리라.  그러나 애도만으로 그치기엔 그의 죽음이 남긴 울림이 너무 크다. 이 시점에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게 있다.

 어떤 형태의 정치자금이든 그로부터 자유로운, 흠결 없는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덮이고 또 세월 속에 묻혀버린다면 이 나라 정치는 희망이 없다. 정치 개혁, 제도 개선, 운영 쇄신을 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희생자, 제2·제3의 노회찬이 나오고 정치는 마냥 뒷걸음질 치게 된다. 마침내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그의 희생을 정치 발전의 계기로 삼아 정치자금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야 한다. 언제까지 어물쩍, 우물쭈물할 것인가. 정치인, 국회의원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더러운’ 정치자금 때문이다.

 ❶정치자금 없이도 정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든지, ❷선명하고 깨끗한 정치자금으로만 정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 둘 중 어느 것이든 절체절명의 과제다. 서둘러야 한다. 머리 좋은 국회의원들이 이것 하나 못 만들어낸다면 정치할 자격도 없다. 그것이 노 의원의 죽음에 우리가 사죄하고 값하는 길이다.

 빈소에 줄지어 선 수많은 사람의 애도 행렬을 보면서 아직 이 나라 정치가 포기할 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최인훈 선생이 쓴 '광장' 서문의 이 구절이 머리를 스쳤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 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노회찬 의원, 삼가 명복을 빕니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와 체제 갈등이 없는 나라를 꿈꾸며 바다로 몸을 던졌듯이, 당신이 죽음보다 깊은 고뇌의 심연에서 망명지처럼 선택했을 마지막 결단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군요. 당신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libert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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