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자수첩]과기부, 블록체인 주무부처 맞나

등록 2018.07.30 11:29:10수정 2018.08.07 10:39:32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기자수첩]과기부, 블록체인 주무부처 맞나

【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선진국의 블록체인 산업현황을 보고 오신 분 계십니까?"

지난달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블록체인 기술 발전전략(안)'을 발표하는 자리서 나온 한 기자의 질문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No' 였다.

이 자리에서 "2022년까지 438억원을 투자해 블록체인 1만 전문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자신하던 과기정통부의 블록체인 관련 부서 실·과장들은 "해외 출장 다녀온 사람 없냐"며 서로의 눈치만 봤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답이 없자 "한번 보러 다녀와야겠네요"라고 애써 웃으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유관 기관으로부터 부적절한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왔던 중앙부처가 바로 과기정통부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로 드러난 사실이다.

그랬던 과기정통부가 정작 발로 뛰어 챙겼어야 할 중요한 블록체인 해외 동향은 빠뜨리고 실무진들이 작성해 올린 보고서만 읊어댔다.

과기정통부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해외 출장을 안 갔다 왔다고 '탁상행정'이라고 덮어씌울 생각도 없다. 요즘처럼 인터넷만 뒤져도 웬만한 정보는 다 수집할 수 있는 판에 꼭 해외출장을 다녀와야만 선진국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4차산업혁명의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가 미국보다 2.4년 뒤쳐진 블록체인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그 실행 방법에 대한 구체성을 놓치고 있다는 데 있다. 나아가 상황을 주도하려는 치열한 문제의식조차 미국은 고사하고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에도 밀리고 있다는 인상이다.

가령 블록체인 업계가 절실히 요구하는 ICO 규제 완화에 대해선 전향적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관련 업계가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금을 유인할 방도가 없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지 의문만 증폭된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블록체인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본격적인 시장 확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사업이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하는 개념 검증(PoC, Proof of Concept) 수준이다. 아직 기술적 성숙도가 무르익지 않았고, 이에 기반한 실제 비즈니스 모델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장애는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금유입 통로가 막혀 있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상용화에 나서겠다는 건 물론 고무적이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공공선도 사업으로 ▲온라인 투표 ▲축산물 이력관리 ▲개인통관 ▲간편 부동산 거래 ▲국가간 전자문서 유통 ▲해운물류 등 6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 선진국 수준의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한 보고서를 인용해 보자.

국회입법조사처 신용우 입법조사관(변호사)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라는 기술적 속성은 비즈니스 방식뿐 아니라 공공조달·행정서비스 등 중앙집권적 사회·경제 체계에도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블록체인은 단순한 요소기술을 넘어 사회적 신뢰 기반으로 자리잡으며 직접민주주의 실현 등 정치·사회구조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블록체인 기반의 수 많은 아이디어가 구현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국가 전략 수립·법제도 정비 등 전방위적 노력과 블록체인 기술 및 산업발전을 위해 블록체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암호화폐 및 거래소, ICO에 대한 규제체계 전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게 신용우 입법조사관의 조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과기정통부의 ICO에 대한 입장은 없었다. "정부 입장과 다르지 않다. 블록체인 기술은 육성하지만, 가상통화는 별개"라던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물론 ICO규제를 무턱대고 풀라는 말이 아니다. 암호화폐에 대한 과열 투자를 우려하는 입장은 십분 공감한다. 금융위원호와 협의해야 할 사안이지 과기정통부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도 아니다.

기자가 지적하고 싶은 건 그런 점을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보통신 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주무부처가 자체 코인 발행에 뛰어든 지방자치단체만큼의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함께 ICO를 금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ICO 추진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려는 스위스, 두바이, 몰타, 싱가포르 등의 국가와 비교된다. 과기정통부가 주저하는 동안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블록체인을 실생활에 도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지난 6월 지자체장 선거에 지역화폐를 암호화폐로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등장했고, 일부 지자체는 이미 실행에 들어갔다.

특히 제주시는 '블록체인 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제주코인'을 지역화폐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던 원희룡 도지사는 오는 8월8일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혁신경제관계장관 및 시도지사 연석회의'에 참석해 블록체인 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건의사항을 정부에 공식 건의할 예정이다. 

블록체인 업계는 제주시가 '블록체인 허브도시'를 조성하면 바이낸스 등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제주에 법인을 설립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이 경우 15만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수많은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국내 ICO 금지 등 규제에 막히는 바람에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힘겨워 하고 있다. 글로벌 블록체인 기술 경쟁력 확보를 외치는 과기정통부, 또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당장 뭔가를 내놓지 못해도 과기정통부가 치열하게 앞장서 고민하는 모습만이라도 보여주길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