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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몰락, 반격, 무죄…키워드로 되짚는 안희정 사건

등록 2018.08.14 13: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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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김지은씨 안희정 지사 미투 폭로

안희정, 도지사 사퇴…정계 사실상 퇴출

안희정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 주장

검찰, 두 차례 구속영장 청구…모두 기각

6월 재판 시작…위력 여부 치열한 공방

검찰, 징역 4년 구형…법원은 무죄 선고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18.08.14.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18.08.1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법원이 14일 안희정(53)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3월 폭로 이후 약 5개월 간 진행된 이른바 '안희정 미투 재판'이 일단락된 셈이다. 폭로에서 1심 선고까지를 8가지 키워드로 되짚어 봤다.

 ◇폭로

 3월5일 밤. 충남도청 정무팀 정무비서 김지은(33)씨가 JTBC '뉴스룸' 카메라 앞에 앉았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본격화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가 우리나라에도 상륙, 문화예술계를 초토화하던 때였다. 약 18분 간의 김씨 인터뷰는 '미투' 들불을 정계로 옮겨왔고, 이 불은 앞선 폭로들이 불러온 공분을 모두 잊게할 정도로 크게 번졌다. 한국 정치사상 가장 충격적인 성추문이 그녀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씨의 미투 표적은 그녀의 상관이자 충남 정계의 정점,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안희정 충남지사였다. 김씨는 "지사에게 네 번 성폭행당했고, 수시로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했다. "미투를 언급하며 사과한 날에도 '그렇게' 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있었다. 정치권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잠시 패닉에 빠진 그때, 김씨는 "국민이 저를 지켜줘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몰락

 김씨의 18분 인터뷰는 안 지사의 30년 정치 인생을 무너뜨렸다. 1989년 김덕룡 의원 비서실에 들어가 정계에 발을 디디고,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서 2002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정권 교체 후 폐족(廢族)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도 2010년부터 두 차례 충남지사에 당선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유력 대권 주자 반열에까지 올라선 그였다.

 안 지사는 김씨 폭로 직후 도지사 사퇴를 선언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접었다. 사실상 퇴출이었다. 그는 "합의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을 뒤집고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용서를 구한다"며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고 했다. 김씨의 폭로를 모두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안 지사를 출당 조치했고, 폭로 다음 날 김씨가 안 지사를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하면서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폭로, 몰락, 반격, 무죄…키워드로 되짚는 안희정 사건

◇반격

 폭로 이후 나흘 동안 두문출불하던 안 지사는 3월9일 전격적으로 서부지검에 출석했다. 검찰과 사전 조율 없이 이뤄진 일방적 행보였다. 이날 검찰 청사 안에서는 김씨가 조사받고 있었다. 안 지사는 들어가면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제 아내와 아이들, 가족에게도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김씨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정치적·도의적 용서를 구했지만, 정작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분히 의도적인 발언이었고, 이는 반격의 서막이었다.

 열흘 뒤인 19일 안 지사는 두 번째 검찰 조사에 응하면서 이 사건에 관한 입장을 더욱 명확히 했다. 그는 김씨와의 성관계를 인정하면서도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역공했다. 폭로가 있던 날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던 자신의 발언을 뒤집고 비서실이 내놨던 입장으로 되돌아갔다. 법정 다툼을 통해 형사처벌만큼은 피하겠다는 안 지사의 의지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기사회생

 검찰 수사는 신속했다. 고소장이 제출된 다음 날인 3월7일 수사팀을 꾸렸고, 곧바로 안 지사가 사용했던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을 압수수색했다. 다음 날에는 안 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이후에는 충남도청 도지사실과 관사,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김씨와 안 지사에 대한 조사를 마친 검찰은 폭로 18일만인 23일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혐의는 세 가지로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강제추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이었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안 지사는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최소한의 생존 공간을 확보했다. 법원은 29일 "증거 인멸 우려가 없으며, 도주 염려도 없다"며 영장을 돌려보냈다. 4월2일 검찰은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법원은 이번에도 영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혐의를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영장이 두 차례 기각되자  안 지사 비난 일색이던 여론에도 균열이 생겼다. 4월11일 검찰은 어쩔 수 없이 안 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폭로, 몰락, 반격, 무죄…키워드로 되짚는 안희정 사건


 ◇위력

 이번 사건 심리를 맡은 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기소 후 65일 만인 6월15일 열린 1차 공판준비기일, 일주일 뒤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을 통해 이번 사건 쟁점을 한 단어로 압축했다. '위력'(威力). 안 지사에게 김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의 힘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 힘을 행사했는지, 또 이 힘이 성관계와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앞서 김씨는 폭로 인터뷰에서 "지사와 저는 합의하는 관계가 아니다"며 강력한 위계를 언급했다.

 검찰과 안 지사 변호인단은 준비기일부터 날을 세웠다. 검사는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라며 공격했다. 변호인단은 무죄를 주장했다. "강제추행은 없었고, 성관계와 신체를 만진 행위는 있지만 애정 감정 하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또 "위력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행사하지 않았으며, 위력이 있었다고 해도 성관계와 인과관계가 없다"고 맞섰다.

 ◇진흙탕

 7월2일 1차 공판기일. 검찰이 안 지사를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린 사냥꾼"으로 표현하고, 안 지사 측이 김씨를 "아동이나 장애인이 아닌, 혼인 경험이 있는 학벌 좋은 주체적이고 결단력 있는 여성"이라고 했을 때부터 재판은 진흙탕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25일 간 7차례 열린 공판은 양측 증인들이 등장하면서 최악의 폭로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검찰은 증인들을 통해 안 지사를 자신의 힘을 악용한 권력자로 규정했다. 안 지사 측은 반대로 김씨의 온갖 사생활을 헤집으며 상사를 과도하게 애정한 이해불가의 여성으로 내몰았다.

 공판은 같은 달 13일 안 지사의 아내이자 30년 정치적 동지로 불린 민주원(54)씨가 피고인(안 지사)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서면서 절정으로 향했다. 민씨는 김씨를 둘러싼 각종 추문을 들췄다. 김씨가 안 지사 지지자들에게 '마누라 비서'로 불렸다고 했고, 김씨가 안 지사 부부 침실에 몰래 들어왔다는 내용의 이른바 '상화원 사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민씨의 자극적이고 적극적인 증언은 김씨를 향한 심각한 '2차 가해'로 이어졌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법원의 종국적 사실 인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는데, 증인의 진술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라 지나치게 자극적인 보도가 나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폭로, 몰락, 반격, 무죄…키워드로 되짚는 안희정 사건

◇눈물

 안 지사와 김씨 모두 법정에서 눈물을 쏟았다. 안 지사가 공판 과정에서 수차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보인 반면 담담했던 김씨는 최후진술에서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한 번에 토했다.

 안 지사는 십수년을 함께한 비서실장 등 자신의 최측근들이 줄줄이 법정에 불려나와 증언하는 모습을 보자 결국 울었다. 11일 4차 공판에서 운행비서 정모씨가 증언을 마친 뒤 안 지사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하자 복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했던 장면이 안 지사가 가장 많은 눈물을 보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안 지사는 27일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할 때는 최대한 담담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는 "어떻게 지위를 가지고 인권을 빼앗나"라고 오히려 반문하기도 했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모두 두 차례 모습을 보였다. 첫 공판이 있던 2일과 결심공판이 있던 27일이었다. 당초 모든 재판 과정을 방청하려 했던 김씨는 비공개로 진행된 6일 2차 공판에서 16시간에 걸친 피해자 신문 끝에 병원에 입원해 결심 때까지 나오지 못했다. 김씨는 결심공판에서 오열했다. A4 14장짜리 진술서를 약 40분간 서서 읽으며 수차례 주저앉았다. 그녀는 "피고인을 처벌하지 못하면 피고인과 같은 괴물이 또 탄생해 대한민국 갉아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안 지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무죄

 8월14일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안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 지사가 위력을 가진 건 맞지만 그 힘을 사용해 김씨를 성폭행하고 추행한 건 아니라고 봤다. 또 모든 공소사실에 대한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며, 안 지사에 대한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힘들다고도 했다. 결론은 안 지사가 위력으로 김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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