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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판사들 영장만 모조리 기각하는 법원의 앞날

등록 2018.08.17 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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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김현섭 기자 = '무죄추정.' 모든 형사 사건의 대전제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죄 추정을 빙자해 죄없음을 단정하는 일이 간혹 벌어진다. 무죄 추정 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오염하는 경우다.

 최근 그런 사례가 있었다. 그것도 법원에서 말이다.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 구속영장이 그랬다.

 지난달 31일이었다. 검찰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불법 개입' 혐의를 규명하기 위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법원행정처와 전·현직 판사들, 외교부 등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외교부 사무실 영장만 발부했다. 현직 판사들 영장은 몽땅 기각했다. 기각 사유는 기가 막힐 정도다. 법원은 "문건 내용은 부적절하나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한민국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다. 영장을 기각하는 것과 '일개 심의관'이 무슨 상관인가. '대한민국 대법관'이라는 표현은 왜 등장했나. 지위고하에 따라 법의 잣대가 달라진다는 뜻인가.

 지난 15일 법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검찰이 '부산 건설업자 뇌물사건 재판 개입' 수사를 위해 청구한 현직 판사 영장을 기각하면서 그랬다.

 당시 법원은 "건설업자 행위나 법원행정처 작성 문건들이 그 재판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했다.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이다. 검찰 수사가 막 시작됐는데, 법원은 재판도 않고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버린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무죄 추정'이라고 하는가. 법원 스스로 낯뜨거워 해야 일이다.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무조건 내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법관이라는 이유로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며 역차별을 해서도 안될 일이다. 하지만 기소하지도 않은 사건의 무죄를 영장 단계에서 예단하는 건 명백한 잘못 아닌가.

 법원의 발목잡기가 계속된다면 앞날은 뻔해 보인다. 검찰 수사는 하나마나다. 실체 규명은 이뤄질 수 없다.   

 법원은 이런 상황을 반길 게 아니다.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겠다'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선언은 이제 물건너 가게 생겼다. 신뢰 회복은커녕 불신만 가중될 판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요지부동이다. 과연 법관 사회가 신뢰 회복을 원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법원이 국민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이런 자신감이 나올 수 있을까. '양승태 시절'의 사법부 구태와 단절하고 거듭나는 길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사법부까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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