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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아트클럽]한국화가 이영지의 '찬란한 슬픔의 봄' 같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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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8-22 16:30:44  |  수정 2018-08-22 16:41:53
22일부터 서울 인사동 선화랑서 제 14회 개인전
장지에 분채 초록점으로 풍성한 '나무 그림' 눈길
갑작스런 부모님 사망후 작업 매진 "이젠 내 그림서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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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22일부터 개인전을 여는 이영지 작가가 '수고했어, 오늘도' 그림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시간은 차갑게 식혀주고, 명확하게 보여준다.'(마크 트웨인)

 한국화가 이영지(43)의 작품이 그렇다. 점점점 찍어 완성한 푸른 나무, 짙푸른 풀밭과 오솔길은 '시간의 그물망'이다. 온전히 시간에 내준 작품은 구김살없다. 나뭇잎 하나 하나는 물론 꽃점들과 풀줄기들이 오롯이 존재감을 발한다.

 시간을 뚫고 나온 작품이어서일까, 보는 순간 마음을 잡아챈다. 초록의 싱그러움과 화사함에 눈길을 뺏기지만 화폭에서 내뿜는 공력에 갇힌다. 은은하게 발색하는 한국화의 깊이감이다.  

 장지위에 분채로 나온 작품은 한땀한땀 수놓는 장인 정신과 통한다.  한국화는 밑작업이 시작의 반이다.

 여러겹 붙이 장지 위에 반수처리를 하고 그 위에 반복적인 아교 처리를 수차례 덧칠해야 색칠을 할수 있다. 시간을 견디기 위한 조치다. 장지지만 색이 변하고 좀이 스는 것을 좀 더 늦추기 위한 '항산화 효과'로 작가는 이 과정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덕분에 초록색과 노랑색등 장지위에 노니는 오방색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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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니네 다 티나 72.7X60.6 장지위에 분채 2018

10여년간 그려온 '나무 그림'이 서울 인사동 터줏대감 화랑 선화랑에 걸렸다. 그동안 '작은 화랑'에서 주로 선보여 그림은 보였지만, 이름은 부각되지 않았던 작가의 의미있는 변화다.

 선화랑(대표 원혜경)이 주목한 작가를 선보이는 기획시리즈 '예감'전(2016년)에 선정된후 선화랑과 인연을 맺었다. 화랑내 그룹전과 아트페어를 통해 소개하다, 작가의 14회 개인전을 펼친다. '테스트는 끝났고, 컬렉터도 확보됐다'는 화랑의 자신감이다.

 22일 선화랑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 이영지는 자신의 그림같았다. 연약하면서도 화사한 작품처럼 양면성이 공존했다.

 그동안 화랑가에 선보였던 '이영지표 그림'은 이파리가 풍성하지만 가지는 앙상한 '나무 그림'이다. 반면 이번 전시에는 풀숲과 화사한 꽃들이 함께하는 풍성한 화면이 눈에 띈다. 웬지 쓸쓸함이 감돌던 이전 '나무 그림'과 달리 촉촉해진 느낌이다.

 "제 그림에는 슬프고 아픈 것을 안넣으려고 했어요. 제가 그냥 그림을 딱 봤을때 한점 한점에서 행복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작가는 "그동안 오만했었다"고 털어놨다.

"내 그림을 사랑해주고, 좋아해주니, 나는 누군가를 힐링 시켜주는 작가구나"라며 작업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제가 제 그림에서 치유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결국은 내가 좋아서 하는게 행복한거지, 누군가를 위해서 한다는 건 아니구나를 알고 반성했죠."

 "그동안 참 행복을 쫒을려고 노력했어요. 그냥 내 주변에 있었던 건데, 어떻게 하면 행복하지? 나는 뭘하면 행복하지?를 생각했던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생각을 내려놓고 보니, 일상이 행복이라는게 보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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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너도 내맘일걸 45X65 장지위에 분채 2018

 인생은 '희로애락 칵테일'이다. 안도현의 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 처럼 생명있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다. 작가는 일찍 그것을 경험했다. 찬란한 기쁨속에는 거대한 슬픔도 함께한다는 것을.

  작가가 처음 선보인 '나무 그림'은 큰 나무 하나가 정중앙에 자리했는데, 나뭇 가지처럼 가볍게 떠있는 모습이었다. 건조하면서도 외로운, 웬지 '덧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은 서정성이 도드라졌었다.

 앙상하면서도 풍성한 나무 그림은 '망각'에서 탄생했다.

 "대학원시절 엄마가 교통사고가 나서 갑자기 돌아가셨고, 2년후 아버지가 등산하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두번을 연달아 겪다보니 멘탈붕괴가 와서 어떻게 살아가야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난 아니야, 난 아니야'라는 생각이 지배했고, 잊으려고 애썼다.  외동딸로 사랑을 듬뿍받고 자랐다. 고등학교시절 아침 잠이 많아 눈을 못뜨면 엄마는 입을 벌려 밥을 떠 먹여줬고, 아버지는 머리를 말려줬다. 그런 것이 당연한 것처럼 살았던 철부지 딸이 대학에 가고 이어진 일상에서 불행이 닥쳤다.

 엄마의 아침 인사 '잘 갔다와~' 말은 영원히 멈췄다. 작가는 "갑작스런 부모님의 죽음 이후 어딜가도 안슬프더라"면서 친구나 지인들의 누군가가 병원에서 아파서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우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병석에 있었지만 오래 오래 이야기했잖아. 오래 그 사람을 봤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남의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슬픈 것은 다 슬픈 것이더라'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다시 붓을 잡으면서 '두근두근 쿵쿵쿵' 감정이 살아났다.  나무를 그리고, 새 두마리를 그려넣으면서 부모님 생각을 한다. 늘 주변을 맴도는 새들은 작가를 위로하고 보살피며 화폭에서 정을 나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울컥울컥할때가 아직도 많다는 작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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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많이 많이 더 60X60 장지위에 분채 2018

 그림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다양한 감상자의 몫이지만, 진정성은 고스란히 전달된다.

 지난해 전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할머니가 작가의 그림앞에서 울고 있었다. 주변에서 놀라고 작가도 당황했다. 사연이 있었다.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집안에만 칩거하던 할머니를 딸이 억지로 끌고나온 자리였다. 할머니는 작가의 그림을 보며 '아들이 바구니에 열매를 가지고 날아오고 있다'면서 마음에 들어했고, 작품을 구매했다.

 작가는 "이후 그 작품을 매일 보면서 행복해하신다는 말을 듣고 화가로서 보람있다"고 했다.

  그림을 보며 부모님 생각에 울컥하던 작가가 말했다.

 "몇살쯤 되면 마음이 가라앉아요?" 라고 선배에게 물었더니 "그런게 어딨니. 그냥 참고 살아야지"라고 하더라면서 "모두의 삶이 살아 있음을 알게 하는 것에 중요함을 느낀다"고 했다.   

 삶은 점에서 시작하고 한 점은 존재, 두 점은 선, 세 개의 점은 면으로 변화하는 것과 같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무를 그릴 때 이파리를 점처럼 하나하나 담아 존재감을 중요하게 표현한다.

   이파리들이 모여 나무가 되었지만, 나무로 탄생하는 그 순간에 멈출 수 있는 시간을 '새'라는 이미지를 통해 의인화했다. 시간이 머물지 않고 흐르도록 하고자 하는 의미다.

 10년간 나무를 그렸지만 여전히 새롭다고 했다. 성신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1998년 1회 개인전을 연 이후 2006년 나무 그림을 알렸고, 2011년부터 1년마다 개인전을 열었다. 쉬지않고 그려온 작품에 마니아층도 있은 물론, 아트상품 제안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아직은 아트상품을 할 것은 아니다며 미뤄놨다면서 "그냥 지금은 하나밖에 없는 그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보였다.

 "제 작품은 정적인 공간이지만 각자 다른 시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요. 누군가에게는 과거를, 또 다른 이에게는 미래로, 현재로 보이기를요...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과 감정에 따라 다른 시간을 보겠지만 결국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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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Love Me Again 60X170 장지위에 분채 2018

 "그게 뭐냐고요?"

  "사람마다 움직이는 시간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다르고 좋음과 나쁨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간을 느낄수 있다는 것, 또 각자의 조금씩 다른 삶이 있으니 그에 충실하면 되죠. 지금, 살아 있으니까요."

  짧은 시간과 유한한 삶을 찬란한 봄 처럼 화폭위에 붙들어 맨 전시는 9월8일까지 이어진다. 타이틀은 '네가 행복하니 내가 행복해'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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