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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이은경, 춤을 입으로 추다···'말, 같지 않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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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8-27 0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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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버려!", "버리고 새로운 것을 끄집어 내", "가지고 있는 욕심을 버리라고!"

여덟 살에 무용을 시작한 현대무용 안무가 이은경(35)이 그동안 가장 많이 들어 온 말이다.

신작 '무용학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에서 이를 몸소 실천해 낸다. 여러 겹 겹쳐 입은 바지를 하나씩 벗어낸다.

이은경은 "바지는 껍질을 뜻하는 것인데, 일종의 안전장치 같은 거죠. 몸에 익숙한 것 말이에요. 습관이니 그걸 쉽게 떼어 낼 수는 없어 입었다 벗었다 해요"라고 말했다.

'말, 같지 않은 말'은 9월 6~9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지는 국립현대무용단 픽업스테이지 '스텝 업'의 하나로 선보인다. 현대무용 안무가 안성수 예술감독이 이끄는 국립현대무용단이 국내 안무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창작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했다.

이은경은 2016년 국립현대무용단 '안무랩-여전히 안무다'로 '무용학시리즈 vol.1: 분리와 분류'를 내놓았다. '말, 같지 않은 말'은 전작과 맥아 닿아있다. 그녀가 2006~2008년 무용 강국 벨기에 파츠 유학 시절 안무가로부터 받은 서술형 평가서의 텍스트가 중심 소재가 됐다. 25년간 무용을 하면서 본인도 모르게 몸에 쌓인 피드백, 칭찬, 꾸짖음 등 방대한 양의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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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은 "버리기 싫은 부분도 있었고,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있었어요. 평가서와 저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충격이자 묘한 쾌감이 들었다"며 웃었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힘만 좋네", "5㎝만 더 컸으면" 등 함께 하는 다른 무용수들 역시 각자의 무용 이력에 쌓인 말들을 이번에 폭발시킨다. 종이가 중요 오브제인만큼 무대 위에는 A4용지 500장이 깔린다. 네 무용수들과 한 무용수의 몸에 달려 들어 유성펜으로 여러 글을 쓰는 퍼포먼스를 특기할 만하다.

이은경은 "이번 공연에서 말과 글이 굉장히 중요해요. 매직으로 써서 각인된 몸을 만든다"면서 "몸과 글자가 하나가 돼 뒤엉키는 거죠. 몸에 써진 글자가 지워지기도 하는데, 이 공연을 하는 동안 새로운 몸을 보게 됐으면 해요"라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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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안무자와 무용수 그리고 관객들에게 '몸의 세례식' 혹은 '무용의 세례식'이 된다. 일종의 정화의식인 셈이다. "무용수들이 정말 접촉하거나 엉켜서 춤을 춰요. 그러면서 몸에 각인된 글을 지워주기도 하고 가려주기도 하죠. 각인된 몸과 새롭게 태어나는 몸을 오가게 되는 거죠."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예술사 과정을 졸업한 이은경은 '무용계의 유목민'으로 통한다. 한곳에 안주하기보다 노마드처럼 떠돌며 무용을 연마하고 안무를 단련했다.

한예종 재학 시절 '안성수 픽업그룹'에서 춤을 갈고 닦은 그녀는 벨기에 안무가 안네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가 감독으로 있는 파츠에서 '리서치 사이클'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벨기에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다양한 안무 활동을 했다.

2013년 귀국 후 훗날 남편이 될 안무가 김보람과 함께 '가다 프로젝트'라는 리서치와 공연 단체를 만들었다. 이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에서 무용수로 활동했다. 현재는 개별 프로젝트에 방점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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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이 귀국 후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용 같지 않다"다.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에 무게중심을 둔 기존의 현대무용과 궤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은경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자신 안에 있는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용 공연은 신체 언어가 주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에도 이은경이 '말, 같지 않은 말'에서 실제 말을 많이 삽입한 이유는 "폭 넓게 생각하는 스타일인데, 말이 움직임이나 작품의 재료로 크게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았다"며 웃었다.

"관객들이 보지 않으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대중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항상 해요. 관객들을 졸게 하지 않게 하려면 몇 가지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강압적으로 느껴질 때 질문을 하게 되죠. 보다 소통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 방식대로 그것을 하고 싶어요. 무용에 대한 고민은 제 안에서 출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제 방식을 잘 풀어내고 싶어요."

이은경의 유목민 작업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개인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 "제가 좋아하는 것도 많고 여러 사람에게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고 한다. "안무가로서나 무용수로서 욕심과 꿈이 많아요. 무용수는 생각을 살찌우는 것도 중요한데, 그건 연습뿐만 아니라 많이 봐야 하고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하거든요."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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