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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연출가 라비치오 "어린이, 무대공연계 미래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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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8-29 0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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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빅토리아는 100번째 생일 하루 전, 아침 일찍 일어나 고양이 '시카'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길게 적어내려 간다. 모험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온 빅토리아는 이렇게 99세의 마지막 하루도 평소와 다름없이 보낸다.

이달 14~2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덴마크 극단 메리디아노 '빅토리아의 100번째 생일'은 빅토리아가 살아 온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다가올 날들에 거는 기대를 아름답게 표현했다. 예술의전당 '30주년 페스티벌'의 하나로 펼쳐진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의 한 작품이다. 

덴마크 극단 메리디아노를 이끄는 이탈리아의 공연 연출가 자코모 라비치오(60)는 "나는 단 한번도 어린이 연극을 만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연극"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함께 공연을 보다보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반응에 놀랄 때가 많다. 함께 관람하는 것은 어른과 아이들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좋은 방법이다."

'빅토리아의 100번째 생일'은 3부작 시리즈의 최종편이다. 앞서 모든 생명의 시작과 탄생을 다룬 '제네시스'를 선보였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아니마'는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찾는 소녀의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세 번째는 자연스럽게 삶, 삶의 즐거움을 말하게 됐다. 우리 모두는 크나큰 우주 속에서 아주 작은, 하지만 기적같은 하나하나의 생명이다.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다. 한 번뿐이고 다시 오지 않은 삶을 즐기는 것, 그것이 빅토리아의 삶이다. 한편으로는 위험할 수도 있지만, 행복하다."

극단 창단부터 함께 한 연륜 있는 배우들의 섬세하고 정교한 인형 연기와 영상, 그림자극 등 다양한 표현기법이 어우러진 예술적 공연이다. 카메라가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무대 곳곳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유도하고 시·공간을 부드럽게 전환시키는 영화적 기법에 라비치오의 독창성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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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공연을 영화처럼 만든다. 공간이나 시간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영상과 조명을 사용해서 그런 효과를 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컷하고 장면이 바뀌지만, 무대에서는 한 공간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스토리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만 영상을 사용한다."

라비치오는 세트 디자인이나 효과가 아니라, 숨겨진 이야기나 추가정보를 주기 위해 영상을 트는 것이다. 영상이나 사진은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클래식한 연극 연출도 좋아하지만, 주제를 드러내는데 필요하면 어떤 장르의 스타일도 가져올 수 있다. 단순히 영상을 쓰고, 새로운 기술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주제와 연결돼 있고,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사용한다."

이탈리아 출신인데, 덴마크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덴마크의 어린이극 페스티벌을 보고 그 높은 질에 정말 놀라서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그 즈음에 제작한 작품이 잘 돼서 덴마크 예술진흥회의 지원을 받게 됐다. 그것이 1996년 극단 메리디아노의 시작이다. 그 후로 계속 단원들과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어 여러나라에서 공연하고 있다."

2014년 제22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덴마크 주간에 덴마크 대표작으로 한국을 찾은 뒤 4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왔다. "내가 여러 해 전에 다른 작품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 상당히 다른 느낌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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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사회를 더 생기넘치게 한다고 봤다. "올해 초 굵직한 사건들도 있었고, 내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뉴스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행사 소식이나 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출전 소식도 들었다. 언젠가는 남한이 아니라 통일된 한국으로 이름이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 시기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역사적으로 특별한 순간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관객들은 아주 친절하고 따뜻했다. 일부 관객은 공연 후 사진촬영을 할 때 빅토리아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걸기도 해서 인상깊었다.

"빅토리아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거나, 빅토리아의 인생에 대해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년의 아들과 손을 잡고 온 90세 숙녀도 있었다. 그 날이 그 분의 90세 생일이라고 해서 우리 배우들이 무척 감명 받았다. 공연 자체도 아주 잘 조직되고 운영돼 정말 즐거웠다. 여태까지 많은 투어를 다녀본 중에서 가장 문제가 없는 투어 중 하나다."

9월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일본 인형극단 무수비좌의 '피노키오'도 봤다. 일본 인형극단의 특징과 독특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이탈리아 원작 동화가 다른 나라에서 개성 있는 색깔로 재탄생하는 것을 지켜본 소감이 남다를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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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노키오는 굉장히 무서운 내용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렸다. 검은 토끼라든가, 당나귀로 변한다든가, 상어 뱃속에 들어간다든가 하는 내용이 어린 친구들한테 무섭게 다가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다루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여섯 살인 내 딸도 무서워하면서도 계속 보고 싶어 했다."

7월31일부터 8월12일까지 공연한 한국 극단 '이야기꾼의 책공연'의 물체놀이극 '평강공주와 온달바보'도 봤다. 피노키오가 이탈리아의 이야기이듯, 평강공주와 온달바보는 한국의 이야기다.

"오브제를 사용하는 방법이 무척 독특해서 재미있었다. 하나의 오브제가 여러 가지를 표현하며 변화하는 것이 재미있다. 특히, 시작할 때 배우들이 오브제들이 살아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아이들과 연결을 만드는 부분이 참 좋았다."

한국과 일본은 인접한 나라로 공유하는 정서가 있음에도 또 상당히 다르다. 공연마다 개성이 다르지만, 양국의 작품을 지켜본 결과 차이점이 있을까.

"두 나라 모두 예의바르고 성실한 부분에서는 유사하지만, 한국은 표현에 있어 의뭉스러운 점이 없이 솔직하고 확실하다. 이해하기가 쉽다. 나는 일본에서 공동작업도 여럿하고 있다. 언어적인 표현 밖에 숨겨진 부분들이 많다는 느낌이 있다. 좋다, 나쁘다의 의미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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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연시장에서 어린이 연극은 취약한 편이다. 수요는 있는데, 중요성을 아직 많이 못 느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예술의전당 같은 국공립기관이 어린이 연극의 활성화에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어린이 연극이 중요한 이유, 예술의전당 같은 국공립기관이 어린이 연극을 활성화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이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줘야 자라면서도 계속 공연을 본다. 그것이 어린이극이 중요한 이유다. 좋은 어린이 연극은 어른들에게도 좋은 공연이다. 모든 예술 장르가 그렇듯이, 연극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연극이 영화나 다른 예술과 다른 것은, '공연은 항상 살아있다'는 점이라고 특기했다. "살아 숨쉬는 배우의 에너지에 영향을 받게 된다. 단순히 재미의 문제가 아니다. 좋은 공연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영화 이상의 영향을 줄 수 있다. 아이들이 삶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을 알려달라고? 어린이 공연에 투자하라."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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