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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박영감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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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8-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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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며느리 뽑는 시험’이라는 전래동화가 있다. 박영감은 재산을 지킬 며느릿감을 찾기 위해, 쌀 두되와 보리 두되로 한달을 살아보는 시험을 본다. 첫번째 후보는 계획 없이 밥을 지어 먹다 열흘을 못 넘겼고, 두번째 후보는 쌀과 보리를 섞어 서른 봉지로 나누어 먹을 생각이었지만 보름쯤 되자 밥을 할 힘도 없었는지 포기하였다. 여러 후보가 중도 탈락하였다. 마지막 후보는 첫째날 배불리 밥을 지어 먹었다. 그러더니 일감을 구해 받은 품삯으로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배불리 먹고, 한달째 날에는 품삯으로 받은 쌀로 쌀독을 가득 채웠다.

 인구감소 위기에 처한 세 나라가 있다. 첫번째 나라는 보편적인 보육정책을 추진하면 부모의 자녀양육부담이 경감되어 저출생이 완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두번째 나라는 남성 가구주가 생계를 책임지는 외벌이(male-breadwinner and female-homemaker model)를 전제로 낙태와 이혼을 통제하고, 다자녀가구에는 재정적 지원을, 아이 없는 가구에는 벌금을 부여하는 정책을 폈다. 세번째 나라는 저출생을 개별 가구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보고, 부부가 모두 일하면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각종 사회정책을 설계하였다. 첫번째 나라는 한국, 두번째 나라는 이탈리아, 세번째 나라는 스웨덴이다.

 한국의 2017년 합계출산율은 1.05명이고, 올해는 1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였는데도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자 이미 보육료를 받고 있는 영유아에게 한달 분유값도 되지 않는 아동수당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고민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2016년 합계출산율은 1.34명으로, 1861년 통일 국가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생식의 날(fertility day)'을 지정하여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으나 성차별 논란을 일으키고 난임부부, 결혼이 어려운 청년실업자 등을 모독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대공황이 강타한 1930년대 스웨덴은 전체 인구(1931년 약 615만명)의 약 1/5이 이민을 선택하는 가난한 농업국가였다. 그러나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인구대체율인 2.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2017년 스웨덴 정부는 전체 인구수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스웨덴의 비결은 무엇일까?

 스웨덴은 급할수록 돌아갔다. 저출생은 여러 사회문제가 결합하고 누적되어 나타난 징후이다. 따라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저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처방으로 볼 수 없다. 1934년 스웨덴에서는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과 알바 뮈르달(Alva Myrdal) 부부가 ‘인구 문제의 위기(Crisis in the Population Question)’라는 책을 냈다. 뮈르달 부부는 스웨덴의 저출생 현상이 지속되면 급격한 고령화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정부는 이들의 견해를 받아들여 무료 정기검진, 야근축소, 육아휴직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회정책 패키지를 마련하였다. 스웨덴은 저출생 지속에 따른 급격한 고령화라는 비관적인 미래를 극복하기 위해 양성평등한 맞벌이 가구(dual-earner and dual-career model) 지원에 필요한 정책조합(policy mix)을 통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궁극적으로는 나라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2010년 ‘한국형 복지국가의 미래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보고서는 아동 양육비 부담 증가, 저출생의 장기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 생산인구 감소에 의한 노인부양 부담 증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따른 사회보장 사각지대 확대에 의한 복지지출 증가 등 암울한 한국의 미래를 예측하였다. 이와함께 사회통합을 이루고 소득보장에서 서비스보장까지 아우르는 생활보장으로의 개념적 전환을 통해 국민의 전반적 복지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제시하였다.

 한국과 스웨덴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국도 스웨덴처럼 문제가 지속될 경우 발생 가능한 미래는 예측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극복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미래는 그리지 않았다. 도달하고자 하는 국가 상(像)이 부재하므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끄는 정책조합에 대한 상상력이 빈곤하고 대증요법이라고 비판받는 대책을 쏟아내는 것이다. 한국은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노인부양부담이 증가하고 있으며 높은 청년실업이 만성화되고 이제는 30~40대까지 실업난을 겪고 있다.

 젊은 세대의 만성적 실업에 의한 저출생 현상이 동력 상실의 원인일까?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지원해주면 될까? 산업구조의 변화가 실업의 원인일까? 기업의 혁신이 진통제가 되어줄까? 다양한 합리적인 의심에 정책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없이 목표에 도달하는 동안 겪을 사회변동에 대한 고려없이 당장 문제로 여겨지는 사안에 개별적이고 단기적인 처방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모자라 공무원 수를 늘리면서 공무원연금의 적자 해소를 위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고, 고령화로 노인 빈곤이 극심하니 정년을 연장하자면서 임금피크제 연착륙 전략에 대한 논의는 없었으며, 보육과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니 저출생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데도 어린이집을 늘리고 교사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나선다.
 
 인간의 두뇌는 인공지능이, 육체는 로봇이 대체하여, 고용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뉴노멀(New-normal)인 시대가 다가왔다. 시대와 상황이 다름을 간과하고 스웨덴을 비롯한 성공한 복지국가의 전략을 답습할 수도 없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혁신을 끌어내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고 보편적인 현금급여를 확대하는 것이 오히려 독(毒)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지도에도 없는 길 앞에 서있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 국가가 되어야 하며,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아야 하는가? 추구해야 하는 변화의 방향과 영향에 따라 폭발적으로 확대해야 하는 정책이 있기도 하고 반대로 확대된 정책을 줄여야 하기도 하며 하나의 정책으로 해결이 가능하기도 하고 여러 정책이 동시에 혹은 시간 차를 두고 실행되어야 하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이, 공무원이, 정치인이 이 사실을 모를리 없다. 당장 내 문제는 아니니까, 정권이 바뀌면 또 바꾸라고 할테니까,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지금껏 해오던 것들을 줄이면 표 떨어지니까, 모두가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에게 주어진 쌀 두되와 보리 두되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텐데도.

 ‘월든(Walden)’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우리는 스스로 찾으려는 세계만 발견한다”고 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함께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찾아야 한다. 국민의 1/5이 이민을 선택하는 가난한 농업국가였음에도 양성평등을 실현해 인구감소를 극복한 스웨덴처럼, 턱없이 부족한 식량으로 배불리 먹는 대신 열심히 일해 빈 쌀독을 채운 박영감의 며느리처럼, 당장의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기보다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긴 여행이라는 것, 여행중에 악천후를 만나거나 항로를 변경해야 하기도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둬야 한다.

 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chaelee@na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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