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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제주 블록체인 특구'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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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8-31 15:44:02  |  수정 2018-09-10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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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종희 기자 = "국내 블록체인을 전 세계와 연결하는 교두보로 제주도를 활용해 달라."

 원희룡 제주도 지사가 지난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민선7기 시도지사 간담회'에 참석,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주도를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해 달라는 요청에 귀가 솔깃했던 건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스위스에 법인을 설립하고 지난해 ICO(암호화폐 공개)에 성공한 기업, 서울서 싱가포르서 거점을 옮길 것을 고려 중인 스타트업 등 수 많은 블록체인 관련 기업인들이 한결같이 국내에 규제 없는 특구 조성을 희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정부의 규제로 100여곳에서 최대 500여곳의 국내 스타트업들이 스위스·몰타·싱가포르·지브롤터 등 ICO 선진국으로 빠져나갔으며, 지금도 이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원 지사의 요청은 이런 현실을 정확히 짚은 것으로, 지난 8일 '제4차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 겸 시도지사 연석회의'에서 '규제 특구지역' 지정을 요청한 이후 두 번째다.

 원 지사는 제주도의 특성이 블록체인 산업육성에 적합하다고 말한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서 정부를 보완하여 새로운 규제와 모델을 실험하고 구체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특별한 지역이다. 제주도가 갖고 있는 이런 특징들과 섬이라는 공간적 제약이라는 특성을 엮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준과 규제들을 설계하고 시행할 수 있다."

 원 지사는 지난 6월 지방선거 기간 제주도를 '블록체인 허브시티'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블록체인 허브시티는 '스위스의 크립토밸리' 쥬크시와 같이 블록체인 기술 기업의 창업 기반을 닦고, 국내외 다양한 기업을 유치해 블록체인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원 지사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정부의 입장과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초 암호화폐가 급등락을 거듭하자 ICO(암호화폐 공개) 전면 금지를 선언한 이래 그동안 5번에 걸쳐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조치를 단행했다. 최근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중개업을 세액감면 혜택 업종에서 제외,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여전히 ICO는 금지하지만 블록체인 산업은 육성하겠다는 애매모호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업들은 기술경쟁력과 자금 확보의 어려움을 표하며 ICO를 허용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업계에선 산업 진흥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절박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서는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대형은행이나 투자사들이 블록체인 기업의 토큰에 참여하는 일이 흔하다.

 스위스에 이어 인구 43만명의 소국 몰타는 암호화폐의 성지로 거듭났다. 과감한 규제개혁 덕분이었다. 몰타는 현재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량에서 1위에 올라 있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는 규제가 해소된다고 지금 당장 스위스나 몰타처럼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블록체인 진흥국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이 시점이 지나면 쫓아가기도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를 블록체인 허브로 만들겠다는 원 지사의 포부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원 지사의 요청에 문재인 대통령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지만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대통령이 꼭 짚어 말한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예외 적용조차도 집권 여당 강성파들의 반대로 국회 문턱에 걸리는 게 현실이다.

 다른 나라들이 특구 조성, 법인세 인하, 우수인재 양성 등에 나서고 있는데 국내에선 투기, 자본세탁 등을 이유로 블록체인과 이에 기반한 암호화폐 시장에 규제의 칼날을 거둬들이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단순히 국부나 기술유출을 야기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규제개혁 없이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이 어렵기 때문만도 아니다.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천재일우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차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지만 하드웨어만 그랬다. 소프트웨어에서 제대로 된 경쟁력을 보여준 사례가 없다. 앞으로 산업의 대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은 블록체인의 경우 우리가 앞서간다면 소위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에서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의 '블'짜만 들어가도 부정적으로 보는 이미지가 확산되는 가운데 원 지사가 모처럼 업계의 입장을 청와대에 건의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제주 블록체인 특구 조성' 이슈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문재인 정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대한 정책기조를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2pape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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