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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누군가에서 합법적으로 빼앗는 것···히가시노 게이고 '살인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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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9-06 0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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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그놈을 죽이고 싶다. 그놈 때문에 내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다. 하지만 죽일 수 없다. 살인자가 되기에 내게 부족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살의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면 대체 무엇이 필요한가."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60)의 장편소설 '살인의 문'(전 2권)이 번역·출간됐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에게 철저히 인생을 농락당해 온 남자의 처절한 자기고백이다.

주인공 할머니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다지마 집안은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는다. 다지마 엄마가 자신의 시어머니를 독살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동네에 나돈다. 이로 인해 부모와 친척, 동네사람들 간에 의심과 불신이 번져간다.

다지마 역시 학교에서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혀 따돌림의 대상이 되고, 아버지 병원은 환자들의 발길이 끊긴다. 결국 다지마의 부모는 이혼에 이르고, 낙담한 아버지는 술집여자에게 빠져 가산마저 탕진한 채 폐인이 된다.

외톨이가 된 다지마의 유일한 위안은 초등학교 동창생인 구라모치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 구라모치는 다지마와는 달리 영악하고 말솜씨가 좋다. 다지마는 구라모치가 보여주는 세계에 빠져들고,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의 고리로 엮이게 된다.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처음으로 유인한 악의 소굴은 야바위에 가까운 사기도박의 세계다. 구라모치에 이끌려 찾아간 도박판에서 가즈유키는 가진 돈을 몽땅 털리고, 그 후로도 돈이 생기는대로 계속 도박판을 찾게 된다. 한참 후에야 다지마는 구라모치가 도박집 주인과 짜고 자신의 돈을 갈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그를 죽이고 싶다'는 살의를 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첫사랑을 가로채 자살에 이르게 한 것, 다지마를 다단계 판매 조직에 끌어들여 잘 다니던 첫 직장에서 잘리도록 만든 것도 구라모치였다. 오갈 데가 없어진 다지마는 이후 구라모치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다지마의 사기 행각은 더욱 대담해져 간다.

"돈을 번다는 것은 그런 거야. 누군가에서 돈을 합법적으로 빼앗는 거지. 합법적이기만 하면 더럽고 깨끗하고가 없어."

연금 생활자 노인들을 노린 금 판매 사기, 주식 투자 컨설팅 사기 등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범죄 수법은 1980년대 거품 경제 시기의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들이다. 히가시노 특유의 비정하고 베일에 싸인 암흑세계 묘사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지마 앞에 수수께끼의 인물이 나타나면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이 남자는 어린 시절 다지마가 사기도박으로 돈을 잃었을 때 구라모치와 공모했던 사기꾼이다. 이야기는 다지마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할머니의 죽음과 어머니의 독살 소문으로 시작된 집안의 몰락, 이후의 잇따른 불행 등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히가시노는 서서히 침몰해가는 주인공이 불타는 복수심과 살인 충동을 증폭시키는 심리적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했다. 이혁재 옮김, 1권 364쪽·2권 352쪽, 각권 1만4800원, 재인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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