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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 굴욕시대, 청전(이상범)과 소정(변관식)이 돌아왔다

등록 2018.09.10 15: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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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근대한국화 라이벌중 라이벌 화가

노화랑서 '청전과 소정' 20여점 비교 전시

먹 쓰고 붓 잡는 법부터 화면 구성 대조적

【서울=뉴시스】 청전,추경산수_178.5 x 64 cm_종이에 수묵담채_1960년대 말.jpg

【서울=뉴시스】 청전,추경산수_178.5 x 64 cm_종이에 수묵담채_1960년대 말.jpg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수묵화'가 힘든 세상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 호시절이었지만 이후 서양화나 현대미술에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0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마련한 기획전시에서 전통회화 분야가 6%가 되지 않았다는 발표도 있었다.

 미술품 경매에서 증명한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최근 발표한 올 상반기 작가별 경매 낙찰총액 상위 20위권에는 조선시대와 근현대 한국화 작가는 없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서양화 부문 최고 그림값은 85억원(김환기의 빨간 점화 ‘3-II-72 #220’)까지 치솟았지만 근대 한국화는 제자리 걸음이다.  한국화의 거장 변관식과 이상범의 작품 가격은 40호 전지(100×72.7㎝) 크기 기준 1억원 수준이다.

 화랑가에 현대 미술 위주 전시탓이 크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산수화 혹은 동양화에 관한 기획전이 심심치 않게 열렸었다. 하지만 2000년에 들어와서는 한국화, 수묵화 전시는 보기 힘들어졌다.

 "전통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크게 멀어진 분위기 때문이죠."

 이태호 미술사학자(명지태 초빙교수·서울산수연구소장)는 "우리와 유사한 문화사 성향을 갖춘 이웃 중국과 일본에서는 전통회화에 대한 애정이 유지되거나 근현대 중국화, 일본화 작가들이 상당히 대접을 받는 실상과 비교하면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한국문화의 고유성과 민족의 자존감이 존재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씁쓸한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관망만 할수 없는 일. 이태호 교수와 서울 인사동 40여년 터줏대감 화랑 노화랑이 힘을 냈다.

 이 교수와 노화랑 노승진 대표는 "현재 상황으로는 난망인 듯싶지만 언젠가 민족예술의 높은 가치로 재평가될 가능성도 없지 않을 법하다"며 근대 수묵화의 최고봉이자 역대급 라이벌중 라이벌 화가인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전을 마련했다.

 이태호 교수는 "한국회화사의 흐름으로 판단할 때, 한국미술사의 최고인 18세기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이후 20세기로 이어진 전통화 맥락은 곧바로 청전과 소정을 만나게 된다"면서 "우리 산수화의 역사에서 두 화가는 겸재와 단원에 이어 개성적 ‘청전양식’ 혹은 ‘소정양식’을 완성한 대가들"이라고 소개했다.

 10일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펼친 '청전과 소정'전은 미술애호가들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두 화가는 먹을 쓰는 법, 붓을 잡는 법, 그림 그릴 때 팔을 놓는 방식, 화면구성 등 모든 면에서 대조적으로 다르다.

  수묵산수화에서 청전은 담묵(淡墨)과 담채(淡彩)의 섬세한 변화를 즐겼던 데 반해, 소정은 먹을 상당히 강하고 짙게 썼다. 또 청전이 수평구도에 담은 평담(平澹)한 회화방식은 차분한 서생 같은 기질의 화면이다. 소정의 수직구도나 사선구도에는 불쑥불쑥 필묵을 쓰면서 분방(奔放)을 추구한 야성이 넘친다."

 청전 이상범의 독자적인 화풍이 드러난 시기는 보통 1945년 이후이며,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그가 즐겨 그린 소재는 고전적으로 답습하던 관념화된 천봉만학과 기암괴석이 아니라, 어느 마을에서나 흔히 보았을 듯한 평범하고 친근한 한국의 나지막한 언덕과 들판이었다. 화면을 양분하는 수평구도와 부드러운 세필로 반복한 독특한 필치, 따듯한 심리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청전 작품의 특징이다.

【서울=뉴시스】 소정, 추경산수, 132.5 x 55 cm_종이에 수묵담채_1972년

【서울=뉴시스】 소정, 추경산수, 132.5 x 55 cm_종이에 수묵담채_1972년


 소정 변관식은 한국적 정취가 넘치는 독자적 실경산수화의 한 전형을 이룩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역동감 넘치는 구도와 둔중하고 거친 필치로 그려낸 힘찬 산세와 기암절벽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붓에 먹을 엷게 찍어 그림의 윤곽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먹을 칠해나가는 ‘적묵법’과 그 위에 진한 먹을 튀기듯 찍어 선을 파괴하며 리듬을 주는 ‘파선법’은 소정의 독특한 표현법이다.

 청전 이상범(1897~1972)과 소정 변관식(1899~1976)은 2살 터울로 조선 말기 회화전통을 계승한 한국근대미술사의 거장으로 꼽힌다. 태어난 해로 보면 조선인으로, 1970년대까지 살면서 전통수묵화에 우뚝한 업적을 쌓았다.

  두 작가는 스승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과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晉)에게 배운 전통화풍과 당시 유행하던 일본화법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조선화 정립을 위해 이른 시기부터 노력했다. 1911년 개설된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에서 청전은 심전의 학생으로, 소정은 소림의 외손자로 처음 만나 친분을 다졌고, 이후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청전과 소정은 그림 재료부터 그림의 제목인 화제를 쓰고 자신의 도장을 찍는 낙관(落款)까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근대 화풍을 새롭게 조성하려는 각자 다른 개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서울=뉴시스】 청전,추경산수_27x136cm_종이에 수묵담채_1966년

【서울=뉴시스】 청전,추경산수_27x136cm_종이에 수묵담채_1966년


 청전은 ‘고요한 평담(平澹)’으로, 소정은 ‘자유로운 분방(奔放)’으로 조선의 땅을 재해석하며, 근대 수묵산수화의 쌍벽을 이루었다. 이같이 라이벌다운 회화기량을 견주어도 그렇지만, 인간상이나 인생,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 등이 서로 대조적이어서 흥미롭다.

 청전은 충남 정안들녘 태생으로 서울 도성 안 서촌 누하동에서, 소정은 황해도 웅진반도 태생으로 도성 밖 미아리고개 근처에서 살며 작업에 매진했다.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은 모두 70세 넘어서까지 작품 활동을 했다. 이상범은 76세, 변관식은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상범은 네 아들과 딸을 두었던 데 비해, 변관식은 외아들만 있었다. 두 화가는 살아생전과 마찬가지로 사후에 누워 있는 무덤도 같은 포천시에 묻혀 있다.

이태호 교수는"두 화가는 라이벌로 맞수이면서 동시에 한국근대미술사의 쌍벽이라 할 만하다. 이들이 존재했기에 수묵산수화는 자랑거리로 남았고, 우리의 전통회화 형식이 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청전의 1958년과 1959년 '추경산수', 1966년 '추경산수' 등과 소정의 1960년대 후반 '외금강 삼선암'과 1969년 '단발령', 1975년 '송림' 등 20여 점은 1950~70년대 전성기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다.

【서울=뉴시스】 소정_외금강 삼선암_63x64.5cm_종이에 수묵담채_1960년대

【서울=뉴시스】 소정_외금강 삼선암_63x64.5cm_종이에 수묵담채_1960년대


 이태호 교수는 "현재 화단의 서양 현대미술과 닮은꼴 경향들이 지닌 무미건조함이나 소란함에 비하면, 수묵화 계통의 전통형식은 한층 인간주의적이고 친환경적"이라며 "전과 소정의 수묵산수화는 민족예술로 뿐만 아니라, 그 묵향은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허브 공간을 제공해준다. 한국현대문화사의 정말 귀중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를 연 노승진 대표는 "회화의 중요한 한 부분인 산수화의 세계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불균형을 한국미술계가 안고있다는 점과 같은 말"이라면서 "적어도 근대 육대가, 근대화가 중 10대 화가들이라는 분류는 진부하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청전과 소정에 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를 우리 미술계에서 널리 알려야 할 일"이라고 했다. 전시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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