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리뷰]독서광 다섯살 소녀, 운명 거부하다···뮤지컬 '마틸다'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등록 2018-09-15 06:08:00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다섯 살짜리 '똘끼' 충만한 '책 덕후'가 용기와 감동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이야기. 지난 12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마틸다' 라이선스 초연은 시청각적 잔상의 감동뿐 아니라 마음을 떠받치는 근원적인 감정의 촉감까지 느끼게 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친숙한 영국 작가 로알드 달(1916~1990)의 작품이 원작이다. 영국 아동들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인 다섯살에 마틸다는 '오만과 편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 내려간다. 톨스토리의 책들은 원서로 읽는 것이 낫다 싶어 러시아어도 독학했다. 하지만 물질주의에 찌들어 TV를 좋아하고 책을 증오하는 부모와 오빠, 그리고 아이들 특히 똑똑한 아이들을 싫어하는 교장 틈바구니에서 치인다.

어린이가 주인공이라고 작품의 완성도를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코 다친다. 139년 전통의 영국 명문극단인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가 '레 미제라블' 이후 25년 만에 새롭게 탄생시킨 상업 뮤지컬이다.

작품을 굴리는 커다란 바퀴는 강력한 이야기의 힘. 마틸다 같은 아무리 작은 아이여도 정해진 운명을 개척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걸 보여준다. 아들을 원한 아빠는 마틸다를 '머슴애'라고 부르는데 그때마다 "저는 여자아이라고요"라며 꼬박꼬박 반박하는 그녀는 넘버 '똘기(Naughty)'에서처럼, "왜 쓰여진대로 살아야"하느냐고 반문하는 당돌한 아이다.

이런 소녀에게 가장 필요한 건 믿음과 사랑. 그 사랑과 믿음을 받고 싶어 한 마틸다가 지어낸 이야기는 담임인 '미스 허니'의 아픈 과거, 마음의 상처와 연결되고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눈으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사물을 움직이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던 마틸다는 행복을 찾은 후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 초능력을 유일하게 제대로 사용한 때는 악당 교장 트렌치불을 혼내줄 때였다.

associate_pic
달 특유의 블랙 유머와 풍자가 가득 차 있는 동시에 권선징악의 주제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야기는 가족 뮤지컬로 손색이 없다. 아이들에게 통쾌함, 어른들에게는 뭉클함을 안긴다.

뮤지컬은 공간과 시간이 빚어낸, 공연 장르 중 가장 대중문화에 가깝지만 그래서 예술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전달 할 때가 있다. '4차원의 천재 마틸다'가 '2차원의 원작'을 '3차원의 관객'들에게 오롯하게 전달할 때가 그렇다.

알파벳과 책으로 뒤덮인 무대, 마틸다를 괴롭히는 미스 트런치불 교장의 무시무시한 레이저 감옥, 그녀가 상당한 양의 초콜릿 케이크를 억지로 먹어야 하는 벌을 아이에게 내리는 장면 등 동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특수효과도 일품이다.

'마틸다'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수 있는 장면은 '스쿨송' 신. '알파벳송'으로 불리는 넘버를 부르는 장면인데, A부터 Z까지 각 단어를 활용한 재기 넘치는 곡이다. 주배경인 크런쳄 학교의 정문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로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경쾌한 멜로디와 박자, 각각의 알파벳이 새겨진 블록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안무, 재빠른 무대 전환 등이 눈길을 끈다.

associate_pic
한국어로 공연하는 이번 라이선스는 원작의 오리지낼리티를 살리면서도 원작 자체에서 느껴지는 한국 정서와의 괴리감을 번역과 윤색을 통해 좁히는 것이 과제였다. 예컨대, 알파벳을 활용한 극의 대표 넘버 '스쿨 송'의 어감을 우리말로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느냐 등이 관건이었다.

"예쁜 아기 천사 예쁜 아기 천사… 오 그랬쪄요, 에이(A)구. 근데 지금부터 삐(B) 지고 울지는 마라 반항할 시(C), 죽이는 블랙 코메디(D) 뭐, 이미 니들 성적표는 에프(F) 거친 덫에 걸린 쥐(G) 아직도 엄마 젖냄새에 취(H)해 있지. 아이(I)로 사는 것인 죄인(J) 여긴 꿈과 풍선, 케이크(K)는 없는 진정한 헬(L) 이상하니, 뭔가 애매(M) 해?  이런 반전, 새드 엔(N) 딩. 이것이 현실이다, 오(O) 바니 인생 종 쳤다. 피(P) 볼 준비해. 한 때는 땡큐(Q) 였어. 세상 무엇도 알(R) 수 없던 시절. 이젠 애써(S) 순수한 척, 깨끗한 척 해도 티(T) 도 안 나는 걸. 유(U)리처럼 맑은 너의 눈빛은 텅 비(브이)게 될 거야. 발악할수록 그 고통은 따따블 유(W)치한 짓을 하다 찍혔다간 너는 엑스(X) 표 쾅쾅 왜? 와이(Y)? ABCDEFGHIJKLMNOPQRSTUVWX
와이와이와이와이와이와이와이? 체시 때문이지(Z)!"다.

'마틸다'를 번역한 통번역가 김수빈씨는 "abcd~ 알파벳 소리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한국말(또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영어)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의미적으로는 크게 '학교에서 가서 아이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 반대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는 큰틀을 먼저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표현(외래어 포함) 중에 알파벳 자모음이 들어가는 소리를 다 찾아서 나중에 말이 되게 조합을 했다"고 부연했다.

associate_pic
마틸다 역으로 쿼드러플 캐스팅된 황예영, 안소명, 이지나, 설가은은 저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에너지가 반짝거리는' 이 캐릭터를 각양각색으로 소화한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를 최근 국내에 선보인 신시컴퍼니의 아역 관리 능력이 빛났다.

'마틸다'뿐 아니다. 마틸다를 비롯한 아역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스펙터클과 상상력을 완성해야 하는데 성인 배우들에 뒤지지 않는다. 똑같은 수준으로 '칼군무'를 선보이며 클라이맥스를 완성해내는 '리볼팅', 객석 위까지 넘나드는 그네를 활용한 안무의 '웬 아이 그로 업(When I Grow Up)' 등이 대표적이다. 그네가 객석 앞 관객 머리 위로 올라올 때 객석 뒤편에서까지 환호성이 터진다. 다만 합창에서 정리가 덜 된 음향 등으로 인해 발음이 불분명하게 들리는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극악무도한 여성 캐릭터를 남자 배우가 연기해야 하는 '미스 트런치불' 역의 김우형과 최재림은 우스꽝스런 스커트를 입고 엉뚱한 동작으로 리본 체조를 선보이는 등 그간 주된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열연하다. 내년 2월10일까지.  

 realpaper7@newsis.com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핫 뉴스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