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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성덕' 박천휘 "대극장 뮤지컬 작곡가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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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9-24 0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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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뮤지컬 프로젝트팀 '변주'는 문화상품의 젊은 소비자들이 제 힘으로 생산자가 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뮤지컬과 노래 작곡에 미쳐 있던 물리학과, 식품생물공학과, 수학과 소속 대학생 세 명이 손잡은 것이 1995년 12월, 국내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은 빼놓지 않고 관람하던 이들 소문난 뮤지컬광은 1996년 초 '뮤지컬을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변주'를 구성했다."

국내에서 뮤지컬 장르 개념이 제대로 형성하지 않았던 1997년 서울 대학로는 젊은 창작진이 선보인 창작 뮤지컬 'X라는 아이에 대한 임상학적 보고서'로 떠들썩했다. 어느 일간지는 1997년 3월7일 자에 '아마추어 뮤지컬 나온다'라는 제목으로 이들을 다뤘다.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던, 지면이 귀한 시절 아마추어들의 인터뷰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연세대 노래패 '울림터'가 중심이 되고, PC 통신 하이텔 뮤지컬 동아리 멤버들이 더해진 창작집단 '변주'가 선보인 작품이었다. 동숭아트홀에서 일주일 공연했는데 매진이었다.
    
뮤지컬 작곡가 겸 작사가 박천휘(47)도 변주 멤버였다. 신문기사 속 수학과 학생이 그다. 음악을 맡았다. 박천휘는 원조 '뮤지컬 성덕'으로 통한다. '성공한 덕후', 즉 자신이 좋아하고 몰두한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이다.

1990년대 서울 지역 대학생 노래패 연합에서 활동하던 그는 타 학교 선배가 전해준 뮤지컬 '레 미제레블' 원판 LP를 통해 뮤지컬에 빠져들었다. '레 미제레블'은 혁명 이야기가 먼저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뮤지컬 넘버는 그에게 혁명을 넘어 다른 세계를 보여줬다.

이후 그는 CD로 뮤지컬을 배워나갔다. 뮤지컬 공연이 활발하지 않던 당시 신나라 레코드 등을 돌며 뮤지컬 OST를 되는대로 사들였고, 속지에 적힌 글들로 뮤지컬 공연을 상상했다.

속지에 적힌 글은 대부분 영어였으나 미국계 은행에서 근무한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2년 반가량 살다 온 그에게 언어의 장벽은 없었다.

그렇게 '오페라의 유령'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 '레 미제레블' 작곡가 클로드 미셸 쇤버그 등을 배워나갔다. 그러다 '스위니 토드' 음악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넘버는 기존 뮤지컬과 다른 결의 매력을 보여줬다.

그렇게 그는 미국 뮤지컬계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에게 빠졌고, 한국에서 드문 '손드하임 전문가'가 됐다.
  
"뮤지컬 음악은 패기가 넘쳤어요. 멋있고, 낭만적이었죠. 이런 음악이라면 언제가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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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그는 작곡과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대학로에서 뮤지컬, 연극 음악 작업을 해나갔다. 박근형 연출 등과 작업했다. 한때는 영화음악을 판 적도 있다.
  
그러다 2012년 '가족의 탄생' '만추'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김태용과 함께 작업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 음악으로 부각됐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 무성영화에 라이브 밴드, 뮤지컬 배우 등의 노래를 더해 새로운 공연 형태로 재해석했다.

작곡가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박천휘는 10월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초연하는 서울예술단 창작 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통해 '대극장 뮤지컬 작곡가' 타이틀도 단다.
  
작가 박지리(1985~2016)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최상위 계층이 사는 1지구의 유서 깊은 명문 학교 '프라임 스쿨'에 재학 중인 16살 소년이 주인공이다. 850쪽 분량의 이 소설은 소년 내면의 선악 갈등을 통해 정의와 계급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수작으로 통한다.

 '내 마음의 풍금' '공동경비구역JSA' '마마돈크라이'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신흥무관학교'의 뮤지컬 극작가 이희준(49)이 축약한 대본에서 영감을 얻은 박천휘는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대극장 뮤지컬의 씨앗을 갖고 있다"면서 "어두운 작품이라는 점도 잘 맞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손드하임도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음악을 선보인다.

역시 어렵게 곡을 쓴다고 평을 들어온 박천휘는 이번에 크게 양보했다며 웃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캐리비안 해적' OST처럼 스펙터클한 넘버를 썼다는 얘기다.

박천휘는 이번 작품으로 이 작가와 처음 작업하는 기쁨도 누리고 있다. 두 사람은 10년 전 대학로에서 협업할 뻔했으나 작품이 엎어지면서 무산됐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첫 협업물인 셈이다. 박천휘는 "숙원을 풀었다"고 했다.

특히 이번에 이 작가 덕분에 작사하는 부담을 덜고,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다. 사실 박천휘는 그간 공연계에서 본업인 작곡보다 작사, 번역으로 이름을 더 알렸다. 1998년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공연 당시 박용호 프로듀서 제안으로 처음 가사 작업을 한 그는 2007년 '쓰릴미' 초벌 번역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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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극 '다윈영의 악의기원'
그러다 같은 해 '스위니 토드' 번역, 가사를 맡으면서 명성을 얻었다. 국내에도 마니아층을 보유한 극작가 마틴 맥도너의 '필로우맨'은 박천휘가 국내에 소개하다시피 한 작품이다.

그런 박천휘는 작곡가라는 정체성보다 '작곡도 하는 작가적 마인드'가 더 크다고 했다. "나는 무대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연극 음악, 뮤지컬 작곡 시간은 정작 많지 않다. 그래서 내 음표를 건드리는 것에 예민하지 않다. 드라마가 더 중요하다. 가사가 중요하다. 음악을 빌려 무대 언어 극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위적인 예술가로 통하는 손드하임을 가장 좋아하지만, '대중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 이유다. "늘 뮤지컬을 처음 보는 관객을 생각하려고 한다. 뮤지컬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이 우연히 뮤지컬을 보고도 작품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보는 사람의 눈'으로 봐야 한다."

창작자가 가장 유의해야 할 점으로 그는 작품에 너무 빠져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 생기는 오류를 꼽는다. "객관적인 눈을 가지는 것이 창작자로서 고민이다. 음악극이라는 것은 대중적이며, 관객을 위한 ‘철저한 서비스’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그런 박천휘는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통해 잠시 잊고 지낸 뮤지컬에 대한 설렘을 다시 찾고 있다. "뮤지컬 음악을 듣기만 해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을 잊어버린 지 오래된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초심을 되찾게 됐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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