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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이 원인 맞아요? ' 당시 CCTV 영상 분석해보니…

등록 2018.10.12 14: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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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뉴시스】 이호진 기자 = (사진1) 안시준 중부대 교수가 당시 CCTV에 찍힌 풍등의 이동 경로와 경찰이 밝힌 발화 예상지점을 표시한 사진. 풍등은 사진상 우측에서 좌측으로 떨어지고 있다. 2018.10.12. (사진=안시준 교수 제공)  asake@newsis.com 

【고양=뉴시스】 이호진 기자 = <사진1> 안시준 중부대 교수가 당시 CCTV에 찍힌 풍등의 이동 경로와 경찰이 밝힌 발화 예상지점을 표시한 사진. 풍등은 사진상 우측에서 좌측으로 떨어지고 있다. 2018.10.12. (사진=안시준 교수 제공) [email protected]

【고양=뉴시스】 이호진 기자 = 경찰이 지난 7일 발생한 경기 고양시 저유소 화재의 원인을 풍등에 의한 잔디 화재로 보고 유증기 폭발 원인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공개한 당시 CCTV 화면을 전문가와 분석한 결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발견됐다.

 뉴시스 취재진은 지난 11일 오후 중부대 안시준 사진영상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경찰이 지난 9일 스리랑카인 A(27)씨에 대한 중실화 혐의 검거 브리핑과 함께 배포한 사고 당시 CCTV 영상 편집본을 분석했다.

 <사진 1>은 안 교수가 풍등의 궤적을 1프레임 단위로 끊어 표시한 것이다. 사고 현장을 찍은 대한송유관공사의 CCTV는 초당 6프레임(1초당 6번 촬영)을 촬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사고 당시 바람은 우측 뒤편의 터널공사 현장에서 좌측 앞쪽의 저유소 방향으로 아주 약하게 불고 있었다.

 현재 경찰과 전문가 모두 풍등이 이 바람을 타고 공사현장에서 저유소까지 이동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CCTV에 찍힌 풍등의 궤적이 단 한 번도 화면상 우측으로 이동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A씨가 풍등을 날린 순간부터 낙하 직전 화면이 끊기기 직전까지 풍등은 계속 화면 우측 뒤편에서 좌측 앞쪽으로 이동했다.

 CCTV 화면이 끊기기 직전 풍등이 가로등 헤드 부분을 잠시 가리는 것과 진행 방향으로 볼 때 풍등은 2번 사진의 위쪽 녹색실선보다는 아래에 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음은 CCTV 화면 상에서 보이는 풍등의 크기다.

 <사진 2>에 빨간 원안에 표시된 것이 풍등과 가로등 헤드 부분으로, 일반적인 가로등 헤드는 폭 35㎝ 내외, 길이 55㎝ 내외다.

 경찰은 사고 풍등의 크기를 폭 40㎝, 높이 60㎝라고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풍등과 크기가 비슷한 CCTV내 구조물을 파란색 원으로 표시했다.

 파란색 원 안에 있는 구조물과 빨간색 원 속 풍등의 크기를 비교하면 풍등이 절반 이하의 크기로 보여 상대적으로 훨씬 멀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화면에 보이는 풍등의 크기와 가로등 높이, 직전의 하강 소요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보면 화면이 끊긴 뒤 풍등이 지면에 닿은 시간은 짧게는 6초에서 길게는 10초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종합해 낙하 위치를 추정하면 남색 사각형과 같은 직사각형의 낙하 예상지역이 나온다.
  
 CCTV 화면으로는 공간 왜곡이 심해 협소해 보이지만, 사진속 2개의 저장탱크 위로 보이는 직삼각형 모양의 공간은 가로 60여m, 세로 50m 정도의 넓은 공간이다.

 여기서 문제는 경찰이 발표한 발화 추정지점이다.

【고양=뉴시스】 이호진 기자 = (사진2) 붉은 원이 가로등 헤드 앞을 지나 떨어지고 있는 풍등. 파란 원이 실제 풍등과 크기가 비슷한 구조물. 사진 우측 하단의 남색 직사각형 안이 풍등의 진행 방향과 낙하 속도, 거리 등을 종합해 추정한 낙하 예상 위치다. 2018.10.12.  asake@newsis.com

【고양=뉴시스】 이호진 기자 = <사진2> 붉은 원이 가로등 헤드 앞을 지나 떨어지고 있는 풍등. 파란 원이 실제 풍등과 크기가 비슷한 구조물. 사진 우측 하단의 남색 직사각형 안이 풍등의 진행 방향과 낙하 속도, 거리 등을 종합해 추정한 낙하 예상 위치다. 2018.10.12.  [email protected]

경찰은 A씨가 풍등을 날린 지 4분 뒤인 10시36분에 잔디에 불이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영상 속에서 처음 연기가 피어오르며 발화한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은 사진 1번에 표시된 것처럼 화재로 폭발한 휘발유 저장탱크와 바로 옆 저장탱크 사이로, 옆 저장탱크 쪽에 더 치우쳐 있다.

 앞서 추정한 풍등의 낙하 위치에서 직선 거리로 무려 30~60m 가량 떨어진 곳이다.

 경찰 주장대로라면 풍등은 낙하 직전 CCTV가 끊긴 순간 갑자기 돌풍이 불어 당시 바람 방향과 직각 위치에 있는 이 발화 예상지점으로 10초 내에 30~60m 가량을 날아와야 한다.

 물론 낙하 뒤 풍등에 불이 붙어 불씨가 날렸거나 굴러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낙하한 풍등이 주변 잔디에 불이 붙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발화 예상지점까지 수십 m를 굴러 와야 가능한 이야기다.

 영상에 찍힌 잔디 화재가 발화 예상지점에서 시작해 좌우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이 상황이 말이 되려면 풍등에 불이 붙어서 발화지점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연기가 전혀 없다”며 “풍등에 불이 붙어서 발화 예상지점까지 날아온다면 이해가 되는데 굴러서 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대학의 영상편집 전문 교수도 "화질이 워낙 떨어지고 낙하직전 화면이 끊겨 정확한 낙하 위치 확인은 어렵지만, 이해가 안가는 장면이 많다"며 "정확한 자료 화면이 있어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낙하 위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같은 의문을 풀어줄 풍등 또는 풍등의 잔해를 사고 발생 엿새가 지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잔해는 화재로 유실되지 않는 하부 고체연료와 연료 고정 철사 구조물로, 풍등 고체연료는 연소가 끝나도 대부분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다.

 결국 눈에 보이는 원인이 풍등 밖에 없다는 이유로 풍등을 날린 외국인 근로자를 긴급 체포한 데 이어 이 같은 의문들을 무시한 채 수사 초점을 유증기 폭발 과정에 맞춘 점은 이 후에도 수사 전반에 대한 부실 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대해 장종익 고양경찰서 형사과장은  “풍등 잔해는 당시 화재 진압을 위해 고압수를 뿌리면서 멀리 날아가 버리거나 화재 당시 고열에 녹아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며 “낙하지점에 대해서는 측량을 실시하고, CCTV는 국과수에 보내 분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취재진은 정확한 풍등 위치 확인을 위해 편집 전 사고 CCTV 영상과 다른 각도의 CCTV 영상을 요청했으나, 경찰은 국가기반시설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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