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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빈대잡다가 초가삼간까지 다 태우겠다는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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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0-26 10:49:52  |  수정 2018-10-26 10: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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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서울 지하철역 곳곳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다 서울시 정책에 따라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 100여명이 갑자기 우리 사회 '공공의 적'이 됐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이들이 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는 가족으로부터 '서울시가 공사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일반직)으로 일괄 전환해줄 예정이니 얼른 무기계약직으로 들어가라'는 귀띔을 듣고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한 뒤 손쉽게 정규직 자리를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정규직 전환자 중 일부는 공사 고위직 인사의 배우자나 자녀라 채용 비리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비리가 적발돼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자들 중에는 비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이인 배우자와 부모에게까지 입사시험 응시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들도 있다.

 2016년 12월 승강장 안전문 관리업체에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한 뒤 올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A(37)씨는 처음 무기계약직 채용공고에 응시했던 때 서울교통공사 직원인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A씨 부부는 캠퍼스커플로 대학 2학년 때부터 교제를 시작해 15년 연애 끝에 2016년 결혼했다. A씨는 고시 공부를 오랫동안 했고 아내는 서울메트로에 입사해 현재 대리 직급에서 일하고 있다.

 아내의 지원 속에 고시를 준비하다 잠시 금융 관련 협회에서 일했던 A씨는 부친의 갑작스런 작고 등을 계기로 직업전선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서울이나 인천에 있는 공기업에 비정규직으로라도 입사하기 위해 공기업 협력업체 등 여러 곳에 입사원서를 냈다. 물론 아내에게는 비밀로 했다. 아내에게 말하면 고시를 계속 준비하거나 차라리 정규직 공채를 준비하라며 만류할 것 같아서였다.

 A씨는 서울교통공사 전신인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협력업체에 무기계약직으로 채용이 거의 확정된 뒤에야 아내에게 실토했다. A씨가 "(협회에서) 사무업무가 성격에 안 맞고 했는데 이곳에서 일하면서 (다른 일도) 준비하겠다"고 말하자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입사 후 갑자기 일반직(정규직) 전환 소식이 들려왔고 그렇게 A씨는 올 3월 정규직이 됐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 국정감사 기간 자유한국당이 A씨와 같은 정규직 전환자들에게 고용세습·채용비리 혐의자라는 멍에를 씌웠다. A씨는 "처음에 자유한국당이 의혹을 제기할 때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연락하더라. 그들이 '너 혹시 그런 거 아니냐' 하더라"라고 말했다.  

 A씨는 혹시라도 아내가 채용에 관여했을까 하는 생각에 아내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와이프한테 진지하게 물어봤다.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냐'고 하니 와이프가 황당해 하더라"라며 "와이프는 그럴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모(29)씨는 서울교통공사 전신인 서울메트로 시절부터 기관사로 일해 온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지하철에 관심이 많았다. 김씨는 열심히 공부해 지하철 관련 면허를 취득하는 등 착실히 준비해왔다.

 김씨는 2016년 9월 아버지가 일하는 서울메트로가 아닌 서울도시철도공사의 무기계약직 시험에 응시했다. 면허증이 있으니 일단 공사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다 다른 공기업으로 이직할 요량이었다. 김씨는 경쟁을 뚫고 차량기지에서 전동차를 관리하는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취업 과정에서 김씨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김씨는 "취업 준비할 때 가족에게 말을 잘 안 한다. 필기에 붙어도 어디에 붙었다고 얘기를 안했다"며 "최종 발표가 나고 나서 아버지께 (공사에) 신체검사 받으러 간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축하해 주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아버지에게 미리 말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김씨는 "(아버지의 존재가) 도움이 되는지도 몰랐다.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완벽히 다른 회사"라며 "내가 삼성 면접을 본다고 현대 다니는 아버지한테 말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김씨 본인은 떳떳하지만 자유한국당의 고용세습·채용비리 의혹 제기 후 주위의 시선은 달라졌다. 차량기지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김씨에게 "이것도 다 지나갈 거다, 괜찮다"는 말을 건네지만, 그것 자체가 유쾌하지 않았다고 한다.

 40대 중반인 조모씨는 지하철 보안관이다. 조씨는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인 2011년 기간제 노동자로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입사한 뒤 2012년 무기계약직이 됐고 올 3월 서울시 방침에 따라 일반직으로 전환됐다.

 조씨는 2011년 당시 공사 누리집에 뜬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했다. 1년 단위 계약이었지만, 입사 당시 조씨는 이모가 서울메트로에서 사무직으로 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모에게 입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기간제라 언제 그만둘지 몰라서였다.

 조씨는 "이모한테는 알리지도 않았다. 내가 1년만 할지 2년만 할지 모르니까"라며 "일한지 5~6개월쯤 됐을 때 이모가 '너 요새 뭐하니'라고 물어보더라. 보안관이라고 했더니 이모는 보안관이 뭔지도 모르더라"라고 말했다.

 조씨는 자신의 이름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 중 사내 친인척이 있는 사람 112명' 명단에 포함된 것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그는 "친척이 있는 회사는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냐. 친척이 있는지 확인하고 넣어야 하나. 삼촌이 삼성전자 다니면 삼성화재도 못 들어간다는 말이냐"라며 "엮으려면 다 엮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노동현장에서 차별 받는 이들을 없애고 노동조건을 개선해서 노동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이뤄진 조치다. 그 과정에서 특혜나 무임승차가 발생했다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개선하고 문제가 있는 이들을 처벌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현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까지 다 태우겠다는 꼴이다. 그게 아니라면 '고용세습'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보수대통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같은 보수대통합이 과연 현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는 건강한 대안세력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보수대통합을 거론한 뒤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지적이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이 같은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인한 부작용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박원순 서울시장 망신주기나 이를 발판으로 한 보수통합 시도에 몰두하지 말고 우선 제도 개선부터 착수해야 한다.

 야당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거듭돼온 공직사회 친·인척 특혜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에 나서는 등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떠났던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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