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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사법농단 '희생양' 찾는 고위 법관들…무책임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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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0-26 17: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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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은비 기자 = "수사를 무한정 펼친다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물론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지는 게 맞죠."

 어느 대기업 수사가 마무리될 즈음 한 부장검사에게서 들은 얘기다. 실무자들 가담 정도가 작지 않은데, 어떤 기준으로 기소대상을 선별했는지 묻자 돌아온 답변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임원급 중심으로 재판에 넘겨져 법원에서 중형이 선고됐다.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초유의 사법부 수사는 어떤 결론을 맞을까. 수사대상이 된 법원은 물론 수사하는 검찰도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 70주년 행사에서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사명과 사법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점에서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도 지난 19일 국감에서 "사법부 주요 조직, 수뇌부 수사는 저희도 솔직히 곤혹스럽다"고 했다.

 지금까지 검찰 조사를 받은 전현직 법관들이 80여명이라고 한다. 다들 제 살길을 찾아 나서 남 탓하기 바쁘다고 들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은 "위에서 시킨 일", 상관들은 "심의관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게 기본 입장이다.

 이르면 오늘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역시 법관 사찰, 재판 개입,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죄가 되지 않는다'며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다.

 물론 억울한 면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가 법원행정처에서 5년간 해온 일들은 법관이라는 직업의 무게를 고민하며 재판에 충실했던 판사들에게 허탈감을 줬다.

 '5부 능선을 넘었다'는 사법농단 수사는 임 전 차장에 이어 조만간 그의 직속상관이었던 차한성·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향할 예정이다. 이미 임 전 차장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이들이 공범 관계라고 적시돼 있다.

 수사를 앞둔 이들의 태도는 우려스럽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6월 퇴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보고되는 양이 엄청나게 많은데 다 기억하고 소화 못 한다. 모든 것을 사법부 수장이 다 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고법원 도입'을 지상과제로 삼았던 시기 법원행정처에서 불거진 의혹에 대한 그의 기억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책임 회피 태도는 법원 구성원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을 유발하는 데 한 몫했다고 본다. 이 인터뷰를 지켜보다가 도저히 보기 힘들어 TV 전원을 껐다는 판사들도 있었다. 그가 '알았든 몰랐든 대법원장 임기 중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내가 다 안고 가겠다'고 말을 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만약 자신이 양승태 전 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심의관들과 같은 상황이더라도 다른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일선 판사들을 옥죄고 있다.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을 지키고 수사를 신속하게 끝내기 위해서는 고위 법관들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그것이야 말로 양승태 사법부를 믿고 따랐던 후배 법관들에 대한 도리이고 국민에 대한 예의다. 

 silverli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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