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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킹', 디지털·글로벌 시대에 뮤지컬적인 답

등록 2018.11.11 12:00:00수정 2018.11.11 12: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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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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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이재훈 기자 = 아프리카 토속색 짙은 음악 '서클 오브 라이프'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붉은 태양이 대지 위로 떠 오른다. 기린이 무대 위를 유유히 거닐고, 가젤이 뛰어다닌다. 객석 통로로 코끼리가 들어오는 순간, 공연장은 순식간에 아프리카 초원으로 탈바꿈한다. 훗날 왕이 될 아기 사자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는 첫 장면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150년 사상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으로 통한다.

7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라이온킹’ 첫 인터내셔널 투어는 이 작품이 왜 20년 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증명했다.
 
1997년 11월13일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래 20개국,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공연하며 9500만 명을 끌어모은 작품이다. 20주년을 기념해 월드디즈니 컴퍼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과 마이클 캐슬 그룹, 에스앤코 등이 협력해 인터내셔널 투어를 선보이고 있다.

◇아날로그의 세련됨

아날로그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라이온킹'은 디지털시대에 뮤지컬이 내놓을 수 있는 답이다. 특히 각 동물의 모습과 특징을 표현한 방법과 아이디어는 시적으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극의 중심이 되는 '심바'와 그의 아버지 '무파사' 등 사자들은 배우 얼굴을 그대로 둔 채 분장과 의상에 신경을 썼다. 배우와 인형이 하나가 돼 유연하게 움직이는 치타의 모습, 배우들이 협력해 동화적으로 모습을 표현한 기린·코끼리 등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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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줄리 테이머(66)은 디즈니의 원작 애니메이션 속 동물 캐릭터들이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에 머물며 아시아 가면 무용극과 인형극을 연구한 경험과 아프리카 마스크에서 영감을 받아 마스크와 퍼핏, 배우를 하나로 융화했다. 특히 심바와 무파사 등 주요 캐릭터는 얼굴의 희로애락을 오롯하게 드러내기 위해 마스크를 머리 위에 얹어냈다. 물소떼가 심바 일행에게 달려오는 장면은 원근감 등을 활용한 무대 변환 아이디어로 생생함을 불어넣기도 했다.

뮤지컬 '라이온킹'은 글로벌 이슈도 반영한다. 아프리카 사바나를 배경으로 다양한 종류의 동물이 화합한다. 주인공인 사자 '심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역시 '다양한 문화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조'다.

이번 '라이온킹' 인터내셔널 투어 팀도 마찬가지다. 미국, 영국, 멕시코, 브라질, 독일, 스위스, 호주, 싱가포르 등 18개국 배우와 스태프들로 구성됐다. '라이온킹' 투어를 위해서는 100명이 넘는 인력이 장비 수t을 옮겨야 하는데 글자 그대로 마을 하나가 이전하는 것과 같다. 점차 글로벌화되는 시대, '작은 지구촌'을 은유하는 셈이다.

사실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은 아프리카가 배경이나 '백인 중심 사회'를 공고히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밝은 피부와 황금 갈기의 심바가 백인을 연상케 하고 계급주의, 가부장제 등 요소를 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뮤지컬로 옮겨지면서 이런 비판이 수그러들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흑인 배우들이 대거 합류했다. 디즈니는 2019년 개봉 예정인 영화 '라이온 킹'의 주연급에도 도널드 글로버(심바) 비욘세(날라) 등 흑인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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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킹'에서 음악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팝의 전설' 엘턴 존(71)과 전설적인 작사가 팀 라이스(74) 콤비와 작품의 근간이 되는 아프리카의 솔을 담아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레보 엠(54), '영화 음악의 대부' 한스 지머(61) 등이 동명 뮤지컬 애니메이션에 이어 뮤지컬 작업에 그대로 참여했다.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모두 휩쓴 애니메이션 원곡을 뮤지컬 무대에 맞게 편곡했다. 아프리카 토속 리듬과 멜로디는 물론 서정적인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넘버들은 빼놓을 것이 없다.

◇줄리 테이머, 영민한 연출가

테이머가 없었으면 뮤지컬 '라이온킹' 탄생도 불가했다. 스케줄로 인해 '라이온킹' 인터내셔널 투어의 한국 개막 기념 여러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는데도 그녀의 이름은 이곳저곳에서 계속 거명됐다.

오리지널 연출가인 테이머는 이번 인터내셔널 투어 연출까지 맡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여성 첫 미국 토니상 수상자가 됐다. 그녀는 중간에 사퇴하기는 했지만, 관객 머리 위에서 60㎞가 넘는 비행 장면을 구현하고자 시도하는 등 뮤지컬 ‘스파이더맨’의 초창기 혁신적인 연출을 주도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 공연을 연출하고 있다.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영화 '프리다'(2002), 영국 밴드 '비틀스'의 리메이크 곡들을 엮어낸 '어크로서 더 유니버스'(2007)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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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머는 뮤지컬에서 원작 애니메이션보다 여성 캐릭터가 도드라지게 했다. 변화된 사회의 흐름을 극에 자연스럽게 반영했다. 공연은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애니메이션에서 주술사인 개코원숭이 '라피키'는 수컷이지만, 좀 더 강력한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여자캐릭터로 뮤지컬화했다. 라피키는 극의 정신적 지주다. 심바가 책임감을 느끼도록 돕는 '날라' 또한 심바가 왕의 숙명과 책임감을 깨닫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게 도와주는 강인하고 용기 있는 암사자다.

날라 역의 조슬린 시옌티는 "'라이온킹'이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면서 "실제 암사자는 아기 사자도 돌보고, 사냥도 한다. 그런 모습이 잘 부각돼 있다"고 말했다.

◇‘라이온킹’, 성숙한 시장 반영

이번 첫 인터내셔널 버전이 현지와 협업한 다른 나라 공연들과 다른 점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세계 공통의 작품을 선보이고자 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마닐라를 시작으로 6월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에 상륙하는데 공연 형태가 같다. 기존 버전은 해당 나라만을 위한 프로덕션이었다. 물론 대구 서문시장, 에버랜드, 번데기 샌드위치 등 한국 관객을 위한 배려가 있으나 작은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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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그대로 아시아 대륙을 밟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에서도 2006년 10월 일본 극단 시키가 국내 첫 뮤지컬 전용 극장인 잠실 샤롯데시어터 개관 기념작으로 1년간 공연했다. 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시장 등 이유로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상치 않다. 흥행 조짐이 크다. 12월25일까지 대구 계명아트센터, 내년 1월9일부터 3월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같은해 4월 부산 드림시어터에서 공연이 예정됐는데 대구 공연은 물론 서울 공연 주요 좌석이 거의 팔려나갔다.

디즈니는 브로드웨이뿐 아니라 국제 뮤지컬 시장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1994년 첫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선보인 이후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10대 이하의 어린이 관객을 중심으로 한 가족 관객을 끌어들인 동시에 뮤지컬에 관심 없지만 디즈니에 익숙한 신규 관객을 유입했다.

한국에 첫선을 보인 디즈니 뮤지컬은 2004년 '미녀와 야수' 라이선스 공연이다. 2005년 '아이다', 2016년 '뉴시즈' 등이 이어 라이선스 공연했다. '패밀리 뮤지컬'로도 불리는 '라이온킹'은 뛰어난 완성도와 공감대로 관객의 폭을 넓힐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주로 20, 30대 여성에게 한정된 한국 뮤지컬 관객 연령대를 가족 전반으로 넓힐 수 있다는 기대다.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협력사인 에스앤코 신동원 대표 프로듀서는 "세계 뮤지컬 관계자들이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중이다. 몇 년간 국내 시장이 정체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전 세대가 공감하고 감동하는 무대를 선보여 뮤지컬 관객을 확대할 수 있으면 한다. 다양한 뮤지컬이 폭넓은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이클 캐슬 인터내셔널 투어 프로듀서는 "인터내셔널 투어로 작품의 질을 타협하지 않았다.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의 작품성을 갖고 있다"면서 "2005년 이후로 한국 뮤지컬 시장이 진화하고 성숙했다. 그래서 이번에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대구, 서울, 부산에서 공연한다. 예전 같았으면 서울에서만 공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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