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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폭행에 상습 성추행도"…IT업계 '막장 갑질' 피해 잇따라

등록 2018.11.13 11: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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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의원, IT 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 보고 간담회


【서울=뉴시스】이국현 기자 = #1. 가산디지털단지에 입주해 있는 직원 30여명의 솔루션 개발 회사. 계속 신입만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해 고용노동부의 임금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계약이 끝날 시점에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당과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문제를 만들어 손해배상 소송을 걸거나 내용 증명을 보냈다.

뿐만 아니었다. 사장은 덩치가 큰 직원에게 "돼지새끼"라고 모욕을 주는 것은 물론 일상적인 폭언과 폭행, 성추행까지 일삼았다. 항의하는 직원의 책상은 복도나 벽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남성 직원의 성기나 여성 직원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로 볼에 뽀뽀를 시키는 성추행이 빈번했다"고 증언했다.

 IT업계에서 직장 내 갑질과 폭행 등에 대한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철희 의원은 13일 국회에서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폭행사태'로 본 IT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 사례 보고 간담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최근 IT노동조합과 이철희 의원실이 진행한 '2018 IT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IT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는 ▲심각한 장시간 노동 ▲파견 및 하도급 관행 ▲허울 뿐인 프리랜서의 노동 실태 ▲직장 내 괴롬힘으로 나타났다. 간담회에서는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 외국계 기업 등에서 발생한 각종 '직장 갑질'과 '폭행 사례'에 대한 16가지 사례가 보고됐다.
 
양도수씨는 "2013년 농협정보시스템이라는 IT회사에서 2년6개월 동안 8770시간 근무하고, 연간 4000시간 이상의 살인적 야근 생활을 했다"며 "폐에 염증이 생겨 호흡기 내과에 입원해 치료했으나 몸의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 항생제가 듣지 않아 우측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법적인 절차를 통해 근무시간의 75%를 사법부로 인정 받았고, 과로에 의한 면역력 저하로 산업재해로 인정 받았다"며 "현재는 소송 중에 두 차례 반복 해도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농협정보시스템을 상대로 해고 무효확인 소송 중"이라고 밝혔다.

 양씨는 롯데하이마트 쇼핑몰 IT 관리자로 근무하던 중 운영팀의 부당한 업무지시에 대해 항의했다가 욕설과 폭언, 폭행을 당했다가 항의, 협력업체로부터 강제 사직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2017년 온라인에서 이슈 제기해 하이마트로부터 폭언과 폭행, 강제사직에 대한 사과를 받았지만 가해자 두 명을 다시 현장에 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살의 디자이너 김현우씨는 '열정 페이'로 불리는 IT업계의 빈번한 노동 착취 사례를 보고했다. 그는 "21살부터 2년 반 동안 근무하며 용돈으로 15만원을 받은 것이 고작"일며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고 편의점 음식을 먹으며 숙식 생활을 강요당하며 집에는 한 달에 한 두번 가는게 고작이었고, 학업 포기를 강요당했다. 지분을 줄테니 회사 주인으로 책임감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서류 없는 말 뿐인 약속이었다"고 호소했다.

안종철 오라클 한국지사 노조위원장은 실적을 맞추기 위한 불법적인 밀어내기 매출, 일상화된 권고사직과 욕설, 차별적인 매출어 분배를 통한 해고 압박 등의 실태를 보고했다. 에스티유니타스의 고(故) 장민순씨가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로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보고됐다. 이 밖에 노예 계약이나 다름 없는 프리랜서 계약, 대기업 계열사의 일방적 권고사직, 외국계 기업의 군기잡기 목적의 공개적 폭언 등도 언급됐다.

정찬일 IT노조 위원장은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의 갑질은 특별한 회사의 괴상한 사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며 "대기업을 중심 고객으로 하는 시스템통합(SI) 산업에서는 하청 구조가 공고하고,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 IT 노동자들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야근으로 감내하고 있고, 갑들은 인격모독을 일삼았다"고 지적했다. 
 
장재원 민주노총 변호사는 "양진호 회장이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가한 행위는 단순한 직장 내 괴롭힘을 넘어 근로기준법 위반, 특수상해, 특수폭행 등 다양한 범죄에 해당한다"며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이 IT업계 내부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IT 업계에서는 이직률이 높은 반면 고용시장의 규모 자체는 크지 않고, 프리랜서, 지분계약, 파견노동 등 불완전 고용이 만연해 있기도 하다"며 "사용자 등 상급자는 절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가혹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당장 해고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직 자체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최근 직장내 괴롭힘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사용자에게 신고하고, 조사토록 했다. 괴롭힘 발생이 확인되면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 조치를 취하고,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하지 않도록 했다. 위반 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취해진다.

다만 장 변호사는 "IT 노동자의 상당수는 원청업체나 발주자 등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원하청 업체 노동자 사이의 괴롭힘에 대해서는 규율할 방법이 없다"며 "특히 IT 근로자의 상당수는 근로계약 대신 프리랜서 계약, 지분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제되고 있어 상당수는 실질저긍로 개정안의 보호를 받지 못한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예병학 11번가 노조위원장은 "몇 년 전 위메프, 쿠팡, 티몬 등 소셜커머스 업체의 대량 해고사태만 봐도 회사가 필요해서 채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해고하는 것은 모럴 해저드를 논하기 전에 이를 당연시 여기는 업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본인의 능력이 부족해서 인정하게 만드는 업계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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