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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왜 노란색 황룡포 차림으로 초상화를 그렸나

등록 2018.11.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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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전 15일 개막

덕수궁관, 대한제국 궁중미술 조명한 국내 첫 기획전

회화, 사진, 자수, 도자, 금속 공예 등 200여점 전시

【서울=뉴시스】전傳 채용신, 고종 어진,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180x10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뉴시스】전傳 채용신, 고종 어진,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180x10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조선의 제26대 임금인 고종(1852-1919)의 초상화다. 철종이 왕자 없이 사망하자 왕족이던 고종은 12세에 임금이 되었다.

 고종이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혁명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으며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열강의 간섭으로 조선 왕조는 위기에 처했다. 이에 고종은 1897년 나라의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자신의 지위도 왕에서 황제로 높였다.

검은 익선관을 쓰고,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색 황룡포 차림의 고종은 금박으로 용머리로 장식한 붉은 어좌에 앉아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근엄한 모습이다. 1901년 고종의 어진을 그렸던 채용신(1850~1941)이 후대에 다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얼굴, 의복은 서양식 명암법을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같은 사실적 기법은 1897년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전환되면서 궁중미술에도 변화가 생기면서다. 규범성이 강하고, 보수성이 짙은 궁중미술의 특성상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에도 기본적으로는 조선 후기 이래로 전해져오던 전통이 지속됐지만, 황제가 된 고종의 위상에 맞춰 황제와 황후에게만 허용되는 황색의 용포(龍袍)와 의장물이 어진과 기록화에 새로이 등장하는 등 달라진 면모를 보인다.

여기에는 국가적으로 어렵던 당시의 상황 속에 황권을 강화하려는 고종의 의도가 반영됐다. 본래 궁중장식화는 본격적인 ‘그림’이라기보다 궁궐의 치장을 위한 일종의 ‘물건’으로까지 여겨졌기 때문에 그 변화가 극히 드물게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고종 시기에 이르러서는 서양 및 일본 미술 등의 사실적이고도 세밀한 화풍을 수용, 변화를 꾀했다. 이러한 면모는 궁중회화 이상으로 보수성이 강한 당시의 불교 회화에도 나타나는 부분으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태극과 오얏꽃 문양이 장식된 신식군복 차림의 호법신(護法神)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상은 모두 대한제국 궁중미술의 시차 없는 저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대한제국시대(1897-1910)라 불리는 고종(1852-1919)과 순종(1874-1926) 시기의 궁중미술을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전을 15일 MMCA 덕수궁관에서 개막한다.

 당시의 회화, 사진, 공예 200여점을 통해 대한제국 시대의 미술이 어떻게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를 마련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배우 이승준이 특별 홍보대사를 맡았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굳은 심지로 근대 국가를 만들려던 고종을 연기한 이승준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 대한제국 미술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승준의 가이드 투어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App)을 통해 만날 수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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