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존재 이유에 답하다, 윤현기 ‘사진사의 사진사’
결혼식 사진필름
윤현기(72)씨가 운영하는 미화사진관의 역사는 아버지가 개관한 이래 50년이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전주 경기전에서 사진관을 하던 일본인에게 어깨너머로 사진을 배웠다.
당대 경제적 여유가 있는 특권층 위주의 초상 사진을 바탕으로 광복 이후 증명사진으로 이어지는 초상 사진의 보편화에서는 사진관이 기능을 담당한 초상 사진의 맥을 유추할 수 있다.
마그네슘 트레이 재현 그림
시작은 흑백이다. 사진을 찍으면 암실에 들어가 현상과 인화를 하고 빠르면 그날, 일이 많은 날이면 다음날 사진을 전달 할 수 있었다. 촬영과 현상, 인화는 미화사진관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관에 와야 했고 결혼과 회갑 등 기록이 필요한 일에는 사진사가 필요했다. 마을에 하나씩 있던 사진관은 주변의 이벤트로부터 꼭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좋은 시절이었다.
미화사진관
사진사를 통해 결혼식과 회갑연 영상 제작문의가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사진의 대중화와 높은 보급률로 사진사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마을 잔치들 역시 이전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결혼식은 지정된 결혼식장의 사진사들이 해결했다. 마을을 넘어, 사진관 넘어 다른 공간에서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과박스 암실 재현 그림
포기를 결심할 즈음 아들은 아버지에게 포토샵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주변 사진관들을 찾아가 관련 내용을 물었고 또 다시 연습과 연습을 거쳐 디지털 사진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했던 그가 컴퓨터를 통해 이미지를 수정하고 사진을 출력했다.
시청 앞 사과암실 상자로 급성 사진을 찍었다. 윤현기씨와 아버지의 동료들
‘사진사의 사진사’는 12월30일까지 계속된다. 작가와의대화는 12월8일 오후 3시다.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낙엽무늬 사진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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