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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라고 쓴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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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2-03 11:35:05
'미투'에서 '빚투'를 파생시킨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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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스테디셀러 뮤지컬 '시카고'를 볼 때마다 화끈거린다. 관능적인 몸짓이 민망해서? 아니, '시카고'는 이미 증명된 쇼뮤지컬이다. 기자에 대한 풍자 때문이다. '시카고'에서 기자들은 선정적인 가십거리만 좇는다. 대공황 시기인 1920년대 미국이 배경인데, 도무지 낯설지가 않다.

그렇다. 이 글은 '기자수첩'이라는 명패를 단 반성문이다.

연예인 가족이 빚진 돈을 채무자들이 폭로하는 최근 일련의 상황을 놓고 아무 경각심 없이 '빚투'(#빚too)라는 용어를 썼다.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에 '빚'을 더한 온라인 합성어.

뒤늦게 '아차' 싶었다. 단순하게도 '폭로성'이라는 사실 만으로 '미투'를 떠올렸다. 빚으로 인한 고난,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의 경중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연예인 가족으로부터 빚을 돌려받지 못한 이들의 괴로움과 아픔을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미투는 예민한 여성들의 괜한 트집잡기가 아니다. 권력 관계에서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다 함께 연대한, 운동이다. 게으른 선택으로 이 단어를 빌리는 것은, 힘겹게 만들어낸 사회적 무브먼트를 퇴색시키는 것에 가깝다.

천주교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미국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의 활약을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감독 토머스 매카시·2016)가 탁월했던 점은 전달 방식이다. 편집과 클로즈업 등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가능한 영화 매체의 특성 대신, 신문의 스트레이트 기사 형식을 취한다. 사건과 이를 전달하는 기자와 언론사를 묵묵히 따라간다. 편집의 리듬감이 돋보이지만, 그것은 신문 기사의 매끈한 문체와 같다.
 
언론 보도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 방식의 태도다. 제목으로 조회수를 높여야 하는 시스템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특히 연예 기사의 경우, 이 질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연예인 가족들의 윤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억울한 부분은 없는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더 고민한 뒤 적합한 단어를 골라야 했다. 단지 연쇄 고발 등의 흐름이 비슷하다고 미투를 끌어온 것은 안일했다. 미투 피해자들의 상처를, 연예인 가족의 채무자 고통을 가십처럼 활용했다.

미국 소설가 수전 손택(1933~2004)은 이미지로 '타인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것에 일침을 가했다. 가십으로 전락하기 쉬운 연예 기사라도, 치열함을 담지 못한 단어·문장의 선택은 고통을 전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문화스포츠부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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