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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미투' 1년…그 남학생들은 왜 손을 들고 서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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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2/13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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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얼마 전 오랜만에 홍대입구역을 갔다. 금요일 밤이었다.

2호선 지하철은 사람들로 꽉 찼다. 젊은 층이 유독 많았다. 밀집한 군중 속의 부대낌을 저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버티고 있는데 어느 순간 이목이 집중됐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3명 때문이었다. 꼼짝하기도 힘든 비좁은 곳에서 무슨 일인지 두 손을 들고 있었다.

"나 지금 엄청 조심하고 있는 거다."

주위엔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과장되게 억울한 표정을 짓고 연신 웃어댔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지난 여름이었다. 꽤 긴 시간 알고 지낸 취재원이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고 반가움에 언제나 그랬듯 악수를 청했다. 반갑게 맞잡을 줄 알았는데 웬걸. 그는 내밀었던 손을 슬쩍 뺐다.

"이제 이러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마주 본 그는 익살스레 웃고 있었다. 장난인 듯 했지만 손은 허공을 맴돌았다.

1년 전만 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방아쇠는 올해 2월 서지현 검사(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가 당겼다. 그의 '미투' 이후부터는 끊임이 없었다. 유명인에서 일반인, 공공기관과 일반기업, 각급 학교까지.

'진짜' 미투와 '가짜' 미투가 나뉘었다. '남성혐오', '역차별'이라는 표현도 생겼다. 누군가는 "그냥 살기도 힘든데 피곤한 일만 늘었다"고 푸념했다.

맞다. 피곤한 일이 늘었다. 비좁은 지하철에서 행여나 내 손이 닿아 '성범죄자'로 몰리지 않을까 조심해야 한다. 친했던 취재원은 악수를 하면서도 '미투' 당하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할 수 있다.

기자도 다르지 않다. 미투를 조롱하는 듯한 행동이 불편해도 '내가 예민한 건가' 싶은 생각에 말하기 주저한다. 참고할 만한 얘기를 뭐라도 들을까 싶은 욕심에 남성 취재원과 둘이 식사라도 하려고 하면 "보는 눈이 많다"며 거절당하기 일쑤라 이제는 청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러나 미투가 남긴 게 피곤함뿐일 수는 없다. 일각에선 불편함을 느낄지 몰라도 우리 사회 공동체 전반에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냈으니 바로 각성이다.

누군가에게는 이상하다고 느끼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또 다른 이에겐 아무렇지 않게 했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내 손이 오해받을 수 있음을, 내 호의가 상대방에겐 불편할 수 있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긴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단 한 번도 없던 장면일 수 있다. 그 극적인 전환을 '미투'가 해냈다.

처음이니까 변화의 흐름이 낯설고 껄끄러울 수도 있다. 원래 변화는 피로하고 성가신 과정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반사적으로 거부하기보단 그 도저한 물결에 담긴 숱한 사람들의 호소와 절규를 헤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일상이 변한다. 그렇게 사회는 업그레이드 되고 세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고작 1년이 흘렀다. '미투'는 이제 시작이다.

 newki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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