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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부터 방탄소년단까지···'케이팝의 작은 역사'

등록 2018.12.30 14: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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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부터 방탄소년단까지···'케이팝의 작은 역사'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2017년 K팝은 재발견됐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선봉이 돼 세계로 뻗어 나갔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H.O.T'를 시작으로 몸집을 불려온 K팝은 아시아에서는 메인 스트림이었지만, 세계에서 볼 때는 '서브컬처'에 지나지 않았다.

문화사회학자인 김성민(42) 홋카이도대 준교수가 쓴 '케이팝의 작은 역사'는 K팝의 탄생과 확장, 그리고 지금 여기를 톺아본다. 김 교수는 K팝이 반짝하는 유행이 아닌 새로운 미디어와 헌신적인 팬덤, 그리고 지금 여기의 뮤지션들이 만든 새로운 세계적 팝이라고 여긴다.

'보는 음악' 도입부터 아이돌의 등장, 블랙뮤직과 만남, 힙합 문화의 수용, 한국형 매니지먼트의 정착, 일본 진출과 돔 투어, 그리고 아이튠즈와 유튜브의 시대를 관통해 생긴 문화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첫 한국 아이돌인 '소방차'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H.O.T.' 보아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엑소'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궤적을 좇으며 K의 역사는 '아류에서 벗어나는 과정'이었다고 판단한다.

김 교수가 K팝의 원형이 나타난 시기로 꼽는 건 1987년에서 1997년 사이다. 당시 한국사회는 민주화, 개방화를 겪고 있었다.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 다른 음악을 갈구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한국 대중음악은 1980년대 MTV가 열었던 '보는 음악' 기반 위에서 일본 아이돌과 미국 아이돌의 특징을 흡수해 '보는 음악과 아이돌의 시대'를 열었다"고 짚었다.

여기서 소방차와 김완선이 등장한다. 미국 음악 중에서도 특히 1990년대를 섭렵한 '블랙뮤직'을 시차 없이 도입하면서 랩·힙합도 K팝의 저변에 스며들게 된다. 이 블랙뮤직의 도입을 대표하는 가수가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당대의 싱어송라이터들, 즉 유재하·신해철·김현철·윤상·이승환 등의 뮤지션은 외국 장르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팝' '제이팝'과 차별화한다. 새로운 '한국팝' 프레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여기에 한국형 매니지먼트가 더해지면서 마침내 K팝이 탄생한다. 물론 이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핵심은 아이돌이었으며, 여기서 H.O.T.가 태어났다.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H.O.T.는 헌신적이고 조직적인 K팝 팬덤을 출현시키고 중국 등지에서 해외 음악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K팝만의 새로운 산업 모델을 제시하며 '한류(韓流)'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음악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아이튠즈와 유튜브가 지배적인 미디어로 부상했다. 특히 '보는 음악'에서 출발한 K팝은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최적화돼 있던 콘텐츠였다. 뛰어난 비주얼, 칼군무, 다채로운 패션 등을 바탕으로 빠르게 확장했다.

K팝 팬덤은 SNS에서 동영상 편집, 동영상에 자막 달기, 리액션 비디오 업로드 등의 활동을 전개하며 K팝의 지형도를 확장했다. 빅뱅, 소녀시대, 엑소,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은 여기서 탄생한 팝스타들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은 선발부터 데뷔까지의 여정, 안무 연습 과정 등을 유튜브 등에 공개하고, 팬들과 SNS로 소통하며 팬덤을 구축했다. 자신의 서사와 경험을 노래와 퍼포먼스 속에 녹여내 팬들과 '감정의 공동체'를 이룬 것이라고 김 교수는 분석한다. "지금의 K팝 아이돌은 '과정과 스토리를 공유하는 동시대의 팝스타'"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K'와 '팝' 사이에 존재하는 집단과 개인의 욕망, 한국사회와 세계 질서를 둘러싼 현실과 환상, 세대와 젠더, 지역과 계급의 차이가 복잡하게 얽히며 생겨나는 새로운 감각들. 앞으로 K팝은 화려한 퍼포먼스에 대한 감탄을 넘어 그러한 세계관과 이야기의 매개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56쪽, 1만3000원,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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