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자수첩]퇴임하는 여주 간부공무원의 쓴소리 파문

등록 2018.12.31 01:40:36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소통부재 인사 무사안일 등 조목조목 비판

우리나라 자치단체의 현주소 대변

[기자수첩]퇴임하는 여주 간부공무원의 쓴소리 파문


 【여주=뉴시스】 이준구 기자 =명예퇴직으로 공직을 떠나는 여주시의 한 공직자가 퇴임식장에서 토로한 쓴소리가 공직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39년 간의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자리에서 여주시 곽용석 안전행정복지국장(4급.지방서기관)은 10여 분 동안의 퇴임사 중 50% 가까이를 시장에 대한 쓴소리에 할애했다.

보통의 공직자라면 시장과 후배공직자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등의 의례적인 인사말만 남기고 떠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녹음파일을 통해 들어본 곽 전 국장의 퇴임사는 마치 30년 전, 육군사관학교장 민병돈 중장이 45기 졸업식에서 참석한 노태우 대통령을 비난하고 군을 떠난 것을 생각나게 했다.

곽 국장은 지난 28일 여주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명예퇴임식 자리에서 이항진 여주시장에게 포문을 열었다. “여주 공직사회에 소통이 없다. 시장의 소통방법은 일방통행이다. 공무원을 너무 믿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새로운 적폐를 만들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공무원을 좀 믿어달라”고 강하게 피력했다.

이어서, 정책결정은 신속한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한 토론과 협의과정이 너무 길다고 했다. “870여 명 여주 공직자들은 시장만 바라보며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다. 시장의 결정에 책임은 따르지만 신속한 판단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대목에서 퇴임식에 참석한 이항진 여주시장은 ”명심하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쳤지만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대답인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그는 또 공보관과 정책자문관, 별정직비서관 등에 외부인이 임명되는 것을 빗대어 또다른 '소통의 벽'을 만들지 말아달라고 했다. 명예퇴임이나 공로연수에 있어서도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무원이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해 강요에 의해 명예퇴임을 시키는 사례가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김현수 부시장에 대해서는 “너무 딱딱하다. 야근하는 직원들에게 피자 한판에 콜라 한병 사 주며 등을 두드려주는 여유를 가져달라. 일을 가르칠 땐 눈물이 나도록 따끔하게 야단치고, 보듬어줄 때는 어머니처럼 보듬어주는 게 부시장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시장에 대해서는 여주시 공직자들의 어머니 역할을 기대했으나 시장의 지시만 따르다가 때가 되면 영전해 떠나려는 속셈을 우회적으로 비판 한 것으로 보인다.

후배 공직자들에게도 무사안일과 타성에 젖은 태도, 일을 떠넘기려는 습성을 버리고 직업공무원으로서의 철학을 가지라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를 놓고 "공직을 떠나는 마당에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오랜 만에 시원한 소리를 들어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지만 명예퇴임한 곽 국장의 용기 있는 쓴소리는 우리나라 250개 지방자치단체가 대부분 귀 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이 많다.

곽 국장의 작심한 듯한 퇴임사가 지난 28년의 민선 7기를 거치는 동안 단체장의 독선을 비롯해, 선거캠프 출신들의 무분별한 임기제 및 계약직 공무원 임용, 산하단체장의 논공행상식 시장 측근 임용, 부단체장들의 어정쩡한 위치 및 태도 등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대변한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