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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선거구 개편과 퍼스트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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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1-02 17: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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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정개특위가 한창 논의중인 것은 새로운 국회의원 선거(총선)제 개편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다수대표제로 치러진 2016년 총선거에서 손해를 봤던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등 옛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과 정의당 의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은 떨떠름한 표정이다. 거대 양당 의원들은 '내 일도 아니고 소수정당에게만 좋은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냐' '여유 부리다가 자칫 내 자리까지 위험해진다' 등 반응을 보이며 내키지 않아 한다.

이런 국회 상황을 보면서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의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렸다. 제7회 지방선거를 반년쯤 앞둔 2017년 연말부터 서울 정치판을 떠들썩하게 한 사안은 '자치구의회 선거구 개편'이었다. 개편안 주요내용은 2인 선거구를 기존 111개에서 36개로 줄이고, 3인 선거구는 48개에서 51개로 늘리며, 기존에 없던 4인 선거구를 35개 신설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표의 등가성을 강화하고 인구편차를 최소화하며 시민 이해관계를 다양하게 반영하겠다는 게 획정위의 제안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논의 결과다. 당시 서울시의회 의석 약 90%를 차지하고 있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획정위안을 엎었다. 4인 선거구 35개를 모두 2~3인 선거구로 쪼갠 것이다. 양당은 결국 4인 선거구가 사라진 '개편안 아닌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의장석 점거와 원외 정당 인사들의 방청석 항의시위가 있었지만 거대 양당의 수적 우위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자치구의원 선거는 시의회가 정한 규정대로 치러졌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서울시 자치구의원 432석 중 대부분이 민주당과 한국당에 돌아갔다. 지역구 자치구 의원 369명 중 민주당이 219명, 한국당이 134명이었다. 반면 바른미래당은 8명, 정의당은 5명, 무소속은 3명에 그쳤다. 비례대표 자치구 의원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전체 54명 중 민주당이 30명, 한국당이 23명을 배출했다. 반면 바른미래당은 1명,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0명이었다.

최근 국회 정개특위 논의 과정을 보면 민주당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당론이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거리를 두고 있다. 한국당 역시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2020년 총선을 위한 선거구 획정 기한인 4월까지 정개특위를 놓고 공방을 벌이다가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백지화하거나 미룰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기존 방식대로 치러질 21대 총선은 또 다시 거대 양당의 나눠먹기가 될 수 있다.

거대 양당은 올해 상반기 내내 이른바 '순차(順次) 게임(sequential game)'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순차게임이란 게임이론상 개념이다. 상대의 조건을 먼저 수용하는 '퍼스트 무버(선도자·first mover)'보다 조건을 내걸고 나중에 행동하는 '세컨드 무버(추격자·second mover)'가 유리하다는 게 주내용이다.

세컨드 무버는 퍼스트 무버가 한 행동을 기반으로 자신이 내건 조건을 지킬 수도 있고 안 지킬 수도 있다는 게 핵심이다. 아마도 거대 양당은 선거구 개편 국면에서 서로 추격자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하며 눈치싸움을 벌이고 지연작전을 펼 것이다.

 하지만 선도자가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산업계에서는 신기술을 주도적으로 도입해 시장을 장악하는 기업을 선도자로 칭한다. 선도기업은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모바일, 의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의 기준을 정하고 그 이익을 선점한다. 반면 추격자들은 선도기업이 만들어놓은 틀을 깨지 못해 뒤쫓기에 급급하다가 상당수가 도태된다.

정치판도 시장만큼 급변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성향과 요구는 다양해지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질 것이다.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대외에 표출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요즘 세상에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포괄정당(캐치 올 파티·catch-all party) 형태가 얼마나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다. 정당 대표나 대변인의 한마디보다 누리소통망(SNS) 속 개인의 폭로가 더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직접민주주의 시대에 기성 정당들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처럼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치만 보면서 기존 정당체계와 선거제도의 틀에 유권자를 억지로 구겨넣으려는 '추격자형 정당'은 자칫 도태될 수 있다. 오히려 유권자의 변화를 직시하고 선거제도 개편을 시의적절하게 추진하는 '선도자형 정당'이야말로 재평가를 받아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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