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영빈관 앞뜰에 北松 한그루'···靑 숲 지킴이의 '마지막 소원'

등록 2019.01.08 07:57:00수정 2019.01.08 09:04:08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이보연 조경 담당 주무관 34년 靑 생활 마무리

평생 노하우 담은 다큐 '나무 이야기' 유튜브 공개

【서울=뉴시스】지난 34년 간 청와대 나무를 가꿔 왔던 이보연 조경 담당 주무관이 퇴임을 앞두고 만든 다큐멘터리 '나무이야기'가 8일 대통령 경호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사진=대통령 경호처 제공) 2019.01.08.

【서울=뉴시스】지난 34년 간 청와대 나무를 가꿔 왔던 이보연 조경 담당 주무관이 퇴임을 앞두고 만든 다큐멘터리 '나무이야기'가 8일 대통령 경호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사진=대통령 경호처 제공) 2019.01.08.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평생 청와대 조경(造景)을 책임져 온 '숲 지킴이'의 마지막 소원은 영빈관 앞뜰에 북한 소나무 한 그루를 들여오는 것이었다. 대통령 경호처 소속으로 청와대 숲을 가꿔온 이보연(60) 주무관은 일주일 전 34년 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 했다.

청와대 나무를 벗삼아 살아왔던 이 주무관은 퇴직을 앞두고 지난해 의미 있는 작업을 시도했다. 산림치유지도사로의 '인생 2막'을 준비하면서 청와대에 자리한 180여종 5만여 그루 나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8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평생을 원 없이 나무와 함께 살았던 이 주무관의 마지막 소원은 북한 소나무를 청와대 영빈관 앞뜰 '팔도배미 터'에 심는 것이었다. 팔도배미는 조선시대 임금이 8도 모양을 따라 여덟 배미의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던 데서 유래한다. 청와대 영빈관 앞뜰에 터만 남아있다.

이 주무관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0년 3월 팔도배미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경상도 영덕, 전라도 정읍·곡성, 충청도 청원, 강원도 양양의 소나무를 가져다가 영빈관 앞에 심었다. 북한의 소나무만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이 주무관은 "지난해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영빈관 팔도배미에 북한 소나무가 들어온다면 진정한 팔도배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54분 분량의 해당 다큐멘터리는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춘추관부터 여민1관까지 청와대 동편의 나무를 소개한 1부, 녹지원~수궁터 등 청와대 중심부 나무를 담은 2부와 소정원~영빈관까지 서편의 나무를 설명한 3부로 나뉘어 있다.

이 주무관과 노회은 정원사는 청와대 곳곳을 거닐면서 주변 나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북악산·낙산·인왕산·남산 등을 청와대를 둘러싼 풍수지리부터 노태우·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변화를 맞은 청와대 내부 역사도 나무로 풀어낸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번영'의 의미를 담아 백화원 영빈관에 식수한 '모감주나무'의 같은 종이 청와대 온실 앞에 심어져 있다는 사실도 1부에 소개돼 있다.

이 밖에 리설주 여사가 백두산 천지에 서식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널리 알려진 '만병초'의 진짜 모습, 740살로 청와대 나무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주목', 청와대 정문을 지키고 있는 100살 된 22그루의 '반송'도 2부와 3부에서 소상히 그리고 있다.

강원도 평창에서 나고 자란 이 주무관은 1984년 민간 조경업체를 뒤로 하고 청와대 경호처 조경담당 주무관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한 차례의 부서 이동 없이 같은 곳에서 오직 '나무'만을 가꿔왔다.

【서울=뉴시스】지난 34년 간 청와대 나무를 가꿔 왔던 이보연 조경 담당 주무관이 퇴임을 앞두고 만든 다큐멘터리 '나무이야기'가 8일 대통령 경호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사진=대통령 경호처 제공) 2019.01.08.

【서울=뉴시스】지난 34년 간 청와대 나무를 가꿔 왔던 이보연 조경 담당 주무관이 퇴임을 앞두고 만든 다큐멘터리 '나무이야기'가 8일 대통령 경호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사진=대통령 경호처 제공) 2019.01.08.

청와대 근무 기간 '주경야독'으로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숲해설가 양성 교육도 받았다. 산림치유지도사 1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새로 시작될 인생 2막도 나무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는 "산림을 가꾸는데 그치지 않고 복지 차원에서 치유의 목적으로 숲을 활용하려는 것이 목표"라며 "지자체나 관련 기관 등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청와대에서 조경 업무를 시작한 것이 인생의 최대 행운이라던 그는 마음의 빚을 갚고자 자신이 평생 쌓아온 조경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다큐멘터리를 생각해 냈다. 그림과 사진 중심의 '도감(圖鑑)'보다는 살아있는 모습을 전하기 위해선 영상물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마침 청와대의 4계절을 주제로 영상물을 기획 중이던 대통령 경호처의 구상과 맞아 떨어졌다. 시간의 흐름으로 평범하게 나열될 뻔한 다큐멘터리는 이 주무관이 기획에 참여하면서 '나무 이야기'라는 흐름이 잡혔다.

경호처 관계자는 "퇴직을 앞둔 이 주무관이 자신이 평생 근무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풀어내기에는 나무를 중심으로 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청와대를 찾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청와대 속 나무를 소개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영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어쩌면 청와대 나무에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에 청와대 나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돼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