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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고졸채용·현장실습 정책 불구경한 부처간 칸막이 행정

등록 2019.02.01 12: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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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세종=뉴시스】 이연희 기자 = "왜 다시 아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겁니까?"

현장실습 근로 중 목숨을 잃은 고(故) 이민호 군의 부모를 비롯한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난달 현장실습 참여 기업과 기간을 늘리겠다는 교육부 방침에 반발해 연합체를 꾸리고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열린 발표현장을 찾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직업계고 현장실습 폐지를 요구했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게 가라앉았다가 험악해지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 교사와 학생들은 현장실습 기회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를 잃은 부모 마음을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육부 방안에는 실습생 권익 보호 대책도 일부 담겼으나, '학생 안전보다 취업률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만큼 한계도 분명했다.

왜 기업에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제시하는 대신 인센티브만 부여하는 미완의 정책이 나왔는지 이면을 살펴보니, 실권을 지닌 경제부처의 협력이 눈에 띄게 소극적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번 고졸채용·현장실습 보완 정책 논의에 줄곧 참여했던 조용 한국중등직업교육협의회 회장(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 교장)은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왜 교육부 몫인데 우리를 끌어들이느냐'며 칸막이 치는 현장을 목격했다"며 "아이들 안전과 교육, 취업에 범부처가 나서야 하는데 '교육부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 답답했다"고 환멸감을 드러냈다.

고졸채용과 현장실습 모두 직업계고 교육과 사회 일자리를 잇는 과도기에 학생들을 지원하는 사안이다. 특히 직업교육과 노동전문가들은 고졸채용의 경우 일자리 수보다 미래 산업구조에 맞는 정책을, 현장실습도 학생 안전과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실현하는 게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교육부와 협력할 필요가 있는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는 슬쩍 한쪽 발만 담근 수준에 불과하다. 일선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힘을 가진 산업부, 근로기간 동안 고용감독 해야 할 고용부,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쥔 중기부가 남일 보듯 '특성화고는 교육부 몫 아니냐'며 떠넘기기에 바쁜 것이다.  

지난달 21일과 31일 고졸채용과 현장실습 제도 개선을 위해 유 부총리가 잇따라 주재한 간담회에는 경제부처는 차관 이하 실·국장이 번갈아가며 참여했으며, 강력한 정책의지를 확인하기 보다는 단순한 제안이나 사업설명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 특히 31일 발표현장에 임서정 고용부 차관 대신 참석한 나영돈 고용정책실장은 현장실습 희생자 유가족 측 활동가가 근로안전감독 책임을 물은 뒤에야 안전매뉴얼 배포·근로문화 개선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 하나같이 경제부처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성재민 연구위원은 "향후 제조업 분야가 스마트공장 체제로 바뀌면 고졸자에 적합한 일자리는 많지 않으며, 돌봄 등 서비스 역시 더욱 전문성을 요구하는 만큼 선취업-후진학, 일·학습병행 활성화 등이 기본적인 교육-노동 바탕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원활하게 잇는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유지하되, 노동청 등 관할기관의 감독을 강화하고, 산업계를 움직일 수 있는 부처가 더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의 증언과 성 연구위원의 지적은 문·이과 경계까지 지우는 융합을 통한 혁신과 포용이 시대적·국가적 과제라면서도 여전히 관료제에 젖어 있는 정부 부처들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얘기다. 무시했다가는 고졸채용과 현장실습 문제는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자칫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또 다시 잃게 될 수도 있다.

언제까지 '내 일' '남 일' 나누며 불구경하는 구태를 계속 봐야 하는가. 이제는 고용부, 산업부, 중기부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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