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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몰아주기 '과세 축소' 백지화 논란…쟁점은

등록 2019.02.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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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가진 계열사간 거래는 면세" 기재부 개정안 한달만에 번복

기업정책 주무부처 공정위가 반대…"실태조사 전혀 없다"

재계 관계자 "불가피한 거래는 예외, 국회도 지적했는데…"

【세종=뉴시스】위용성 기자 = 기업집단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놓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세제를 다루는 기획재정부가 상속세·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불가피한 거래'일 경우 과세 면제해주는 방안을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한달만에 백지화되면서다.

기업정책을 다루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 때문이다. 공정위는 '무엇을 불가피한 거래로 볼 것인지'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이런 면세 조항을 도입하는 건 일감몰아주기 과세 취지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경제 활성화의 책임을 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내놓은 규제완화책에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을 맡는 공정위가 제동을 걸고 나선 셈이다.


일감몰아주기 '과세 축소' 백지화 논란…쟁점은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일감몰아주기 문제는 총수일가의 편법 증여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증여세를 매긴다. 기업집단 내 계열사(특수관계법인)들이 총수 일가가 가진 계열사(수혜법인)에 일감을 집중시켜준다. 그러면 수혜법인의 매출이 늘어 총수일가의 이익도 커진다.

한국재정법학회가 낸 '일감몰아주기 과세의 실효성 제고 등 개선방안' 보고서는 이를 두고 "기업집단 계열사의 일감을 이용해 우회적으로 부를 이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일감몰아주기로 시장에 진입장벽이 쳐지면 다른 기업의 성장도 방해한다. 이 보고서는 기재부가 발주한 연구용역으로 나왔다.

보고서는 국내에서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로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 사례를 꼽는다. 2001년 당시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아들 정의선 사장이 설립한 물류회사 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물류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급속도로 성장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비스는 설립 이후 10년간 20조원의 매출액을 올렸는데 여기서 80% 정도인 17조원이 현대차 계열사 거래를 통해 나왔다. 세부적으로 보면 현대차와 그 자회사와의 거래에서 40%, 기아차와 그 자회사와의 거래에서 24%, 현대제철과의 거래가 8%, 현대모비스와의 거래가 7% 가량이 된다.

이 같은 일감몰아주기는 특히 초기 투자비용이 적어 적은 자본만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서비스업 분야인 시스템통합(SI), 부동산, 도매, 광고 등의 업종에서 많이 이뤄진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 문제를 막기 위해 일감몰아주기에 증여세를 매기는 제도가 도입됐다. 현행법상 대기업 총수나 친인척이 3%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수혜법인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 수혜법인이 특수관계법인과의 내부거래로 낸 매출이 정상거래비율(30%)을 초과하는 경우엔 지배주주와 그 친족에게 증여세를 매긴다. 중견기업의 경우 이 정상거래비율을 40%로, 중소기업은 50%로 본다.

◇재계 "불가피한 거래, 면세해달라"…국회서도 지적

다만 예외규정이 있다. 편법적인 부의 증여와는 무관한 '정상적인 거래'는 면세다. 예를 들면 중소기업간 거래로 발생한 매출액이나 수출을 목적으로 한 거래에서 발생한 매출액 등이다.

지난달 7일 기재부는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이 일감몰아주기 과세 면제 대상을 더 넓히겠다고 발표했다. 기재부 안에 따르면 '기술적 특성상 전후방 연관관계가 있는 특수관계법인과 불가피하게 부품이나 소재 등을 거래한 매출액'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때 '불가피하게 부품, 소재 등을 거래한 경우'란 수혜법인이 특허 등 독점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를 말한다.

특허가 있는 계열사라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일감몰아주기로 보지 않겠단 거다. 이는 앞서 재계에서 끊임없이 나왔던 요구이기도 하다. 특히 수직계열화된 기업집단의 경우 연관사업을 하는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피하려면 대주주가 가진 지분을 팔아야 하는데 이때 기술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도 많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도 비슷한 취지로 지적한 바 있다. 기재위는 지난 2017년 11월 "과세대상 및 과세제외 대상 매출액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개선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했다.





일감몰아주기 '과세 축소' 백지화 논란…쟁점은


◇협의 없이 추진했다 뒤늦게 공정위 반발…기재부 물러서

하지만 기재부 발표 이후 공정위가 반대하고 나섰다. 개정안이 담고 있는 과세 면제의 효과나 필요성에 대해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다. 공정위 관계자는 "특허 때문이라면 그를 통한 '불가피한 거래'가 어느 정도 규모로 이뤄지는지, 어떤 형태로 이뤄진다는 것인지, 예외 규정을 뒀을 때 효과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현재는 두루뭉술하고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나올 뿐 실질적인 분석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개정안 내용이 일감몰아주기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단 지적이다. 특허가 있으면 과세 대상에서 빠질 수 있으니 특허기술을 계열사에 몰아주는 식의 편법도 가능하단 우려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정위가 우려하는 부분을 기술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했지만 공정위는 그것도 불충분하다고 봤다"고 전했다.

지난 7일 결국 기재부는 개정안을 철회하기로 했다. 기재부는 "특허 보유에 따른 거래 실태조사 등 현황분석을 거쳐 추후 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철회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개정안이 다시 나오기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실태점검을 할 것인지 등을 실무적으로 논의하는 단계"라고 전했다.

재계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특허기술을 가진 계열사와의 거래는 불가피하단 점을 국회도 인정해 추진된 사안인데 부처간 이해관계가 달라 막힌 것 아니냐"라고도 말했다.

한편 이를 두고 기재부가 무리하게 과세 면제를 추진했다가 부처간 혼선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에 강력한 일감몰아주기 근절 정책을 추진하는 공정위와 마찰을 예견됐던 사안이었단 얘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개정안 추진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공정위와 논의를 거치지 않은 데 대해 "세법 시행령은 세법에 대한 보완 규정이 포함돼 있어 (부처간) 협의를 하느라 무한정 시간을 끌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감몰아주기를 막고자 하는 과세 정책 취지를 생각한다면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관련 우려들을 없애고 (개정안을) 다시 추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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