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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박서영 유고시 5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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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2-14 11: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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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사랑은 날개가 있어 먼 곳을 만질 수 있고/ 그런 주술은 어머니의 것/ 그것은 오래된 것이다/ 어머니에겐 미리 말하는 게 좋을 뻔 했어요/ 주치의가 말했다 나는 그 날 이후 주치의를 바꾸었다/ 그래도 선생님, 몸 안의 은하수가 사라져버리면/ 좀 허전할 것 같아요.'('연인들' 중)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박서영(1968~2018)의 유고시집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가 출간됐다. 시 55편이 담겼다.

'누추한 속옷 내걸린 목련나무 빨랫줄/ 꽃이 어느 시간 속을 이동해 사라지는 것처럼/ 축축해진 옷을 입은 사람의 시간도 말라 간다/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받아먹는/ 야생 고양이 한 마리의 시간도'('목련나무 빨랫줄' 전문)

'저것은 몸에서 울음 다 발라내고/ 은행나무 금관을 쓴 채 발견된 사랑의 배후/ 속이 텅 빈 황금빛 껍데기 속에 누가 손을 넣어 보았나/ 안간힘으로 나무둥치에 붙어 있는 사랑의 배후들// 땅바닥에 떨어져 배 뒤집고 죽어 있는 건/ 다 울고 자신을 버린 매미/ 얼마나 한스럽게 울다 생을 건너갔는지/ 죽어서까지 짓밟힐까 싶어/ 나무뿌리 쪽으로 슬며시 옮겨 주었다'('천 년 은행나무 슬하에서' 중)

박 시인은 "동물원 문을 닫을 시간이야"라며 "흩어지는 모래밭에 두 발을 묻은 토끼가/ 갑자기 일어서서 노을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은다"고 했다.

"두 손을 맞잡은 토끼의 모습이/ 헤어진 인연을 끌어당기듯 따스하고 뭉클하다./ 저렇게 작은 짐승이, 저렇게 작은 손으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우정과 사랑을 지키게 해 주십시오.// 아, 저렇게 희미한 소리로 우는 토끼가/ 신의 침묵을 경청하고 있는 토끼가/ 낮은 울타리를 넘어/ 수천 번은 도망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좁디좁은 모래땅을 떠난 적 없이/ 멀고도 높은 꿈의 슬픔에 몰입하고 있다." 136쪽, 9000원, 걷는사람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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