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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지겹다 공식입장, 짜증난다 사실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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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2/15 0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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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공식입장 정리 중입니다.’

방송사와 매니지먼트사는 국가단체인가, 아니면 외교기관일까.

‘[공식]’이라는 문패를 단 연예 기사가 하루에도 수천 건씩 쏟아진다. ‘[단독]’이라고 박은 보도가 나오면 연예담당 기자들은 ‘공식입장’을 구걸한다. 방송사와 매니지먼트사, 홍보대행업체에게.

그들은 연예인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하루에도 수백 번 같은 말을 반복한다. 열애·결혼, 음주운전, 캐스팅 등 각양각색 이슈가 발생한다. 공식입장은 그러나 ‘확인 중’, ‘논의 중’, ‘긍정 검토’, ‘사실 무근’ 등 단 몇 마디로 정리된다.

이 외의 내용을 추가해 기사화하면 바로 항의가 온다. ‘우리끼리 한 얘기인데’, ‘기자님이 편해서 한 말인데’, ‘개인적으로 한 말이지 공식입장은 아닌데’라는 식이다.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슈를 파고들어 정성들여 쓴 기사를 내놓았건만 ‘사실무근’, ‘오보’라는 공식입장 탓에 가짜뉴스라는 의혹을 산다.

홍보팀은 으름장을 놓는다. 구체적인 이유는 대지 않고, 사실이 아니라면서 ‘당장 기사를 내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혹여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왕이나 다름없는 연예인을 건드린 죄에 대해서는 ‘법적대응’ 등의 문구로 겁을 줄 뿐이다.

 온라인 연예매체 절대다수는 그들의 공식입장을 그대로 받아 쓴다. 사실을 전한 기자는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기레기가 또!’라는 따위의 댓글도 어김없이 달린다. 아무리 1000만 기레기 시대로 접어들었다지만, 허탈하기 짝이 없다. 홍보팀의 말을 잘 들으면 좋은 기자, 공식입장과 다른 정보를 내면 ‘기레기’가 되는 셈이다.

연예계 공식입장의 생태계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없다. 매니지먼트사나 홍보대행업체가 특정 매체에 사전 정보성 기사를 제공하면 단독이 나온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해당 기사가 걸리면, 다른 기자들이 전화한다. 그러면 홍보팀은 다른 매체에 공식입장을 내놓는다. ‘검토 중’ 혹은 ‘논의 중’이라며 처음 듣는 소리인 듯 연기한다.

공식입장은 뻔하기에 굳이 연락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도 부지기수다. ‘우라까이’(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대충 바꿔 제 기사처럼 내는 행위)해 시간을 단축한다. 이제는 전화하지 않아도 홍보팀이 알아서 카카오톡, e-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공식입장을 보내온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나날들이다. 연예기자들은 공식입장의 딜레마 속에서 지쳐간다. 오늘도 마음 속으로 외친다. ‘지겹다 공식입장, 짜증난다 사실무근.’ 그러다가 또 고민한다. 홍보팀에 전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문화스포츠부 pla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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