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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백년과 여성]⑤조마리아와 숨겨진 인연들…도산 안창호와 백범 김구

등록 2019.02.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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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리아와 안중근, 안창호·김구와 깊은 인연

두 사람, 조마리아 가족 망명 돕고 생활 지원

조마리아 남편 안태훈, 김구 가족 도피 지원

【서울=뉴시스】도산 안창호

【서울=뉴시스】도산 안창호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조마리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독립운동계의 두 거목인 도산(島山) 안창호와 백범(白凡) 김구다.

두 사람은 안중근 순국 이후 모친인 조마리아와 그 가족의 망명과 해외 정착을 도왔다. 이들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행한 일의 역사적 의미와 독립운동의 상징으로써 조마리아 가족의 존재 가치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1919년 하얼빈 거사 직후 안창호와 김구는 관련 용의자로 일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조마리아는 1910년 5월 남은 두 아들 정근·공근 가족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로 이주한 뒤, 1년 뒤 다시 만주 목릉으로 이동하게 되는 데 이때 이들을 적극 지원한 게 안창호였다.

조마리아 가족은 1914년 3월에는 러시아 니콜리스크로 또 한 번 거처를 옮긴다. 일제의 집요한 추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안창호는 이때도 미국에서 정근·공근 형제에게 자금을 지원해 벼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 안정근은 니콜리스크에서 최초의 벼농사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농장을 만들어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창호와 안정근은 친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19년 4월에 상해에 세워진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안창호는 안정근에게 임정 최대 외곽 단체인 대한적십자회 운영을 맡기기도 했다. 이후 안정근은 임정 북간도 특파원으로 북만주에 난립한 독립단체를 통합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망명 이후 안창호를 통해 러시아어를 공부한 안공근 또한 임정에서 일한다. 안창호는 1920년 1월 안공근을 임정 러시아 특사로 임명해 활동하게 했다. 안창호를 통해 조마리아와 그 가족들이 독립운동 최일선에서 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서울=뉴시스】 백범 김구.(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뉴시스】 백범 김구.(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조마리아가 1922년 여름께 상해로 건너오는 데는 안창호는 물론 김구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마리아는 김구의 모친인 곽낙원(1859~1939)과 친자매처럼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모두 독립운동계 대모 같은 존재였는데, 조마리아가 자애로운 어머니였다면 곽낙원은 엄한 어머니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알기 위해서는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마리아의 남편 안태훈은 동학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관군의 추격을 받던 김구와 그 부모를 자신의 거처인 청계동으로 초빙해 보호했는데, 이때 조마리아와 곽낙원이 친분을 쌓았고 안중근 순국 이후에는 김구 가족이 조마리아 가족을 돕는 식으로 인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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