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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트럼프에 말렸나 성급했나…비핵화 '허들'만 높아져(종합)

등록 2019.03.01 11: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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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제재해제" vs 美 "영변 만으론 안돼" 충돌

"영변, 불충분" 미사일·핵탄두·무기체계도 요구

트럼프, 김정은에 "100%를 가져오라"는 것

北 리용호 심야 회견 "美, 현실적 제안 거부"

최선희 "위원장 동지께서 의욕을 잃으신 듯"

전문가들 "김정은이 트럼프 전술에 말린 것"

"김정은 내상 입어…트럼프는 입지 구축 거래"

【하노이=AP/뉴시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백악관이 공지한 2차 북미 정상회담 2일 차 일정은 '일대일 양자 단독회담-확대 양자 회담-업무 오찬-합의문 서명식' 등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02.28.

【하노이=AP/뉴시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백악관이 공지한 2차 북미 정상회담 2일 차 일정은 '일대일 양자 단독회담-확대 양자 회담-업무 오찬-합의문 서명식' 등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02.28.

【하노이(베트남)·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플러스알파(α)'를 놓고 접점 찾기에 실패하면서 28일 결렬됐다.

북미 정상은 영변 핵시설의 '동결' 등 비핵화 입구 조치에 합의하고 남북경협을 활용한 우회적 제재완화와 관계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협상이 결렬되면서 '영변-제재완화' 프레임은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더 큰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게 됐다. 협상을 재개하기까지 넘어야 할 허들이 더 높아진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이 결렬된 직후 자신의 숙소인 JW메리어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북한에서 제재완화를 전체적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제재완화가 아닌 제재해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북한의 '제재해제'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더 필요했다"고 밝혔다. 영변 핵시설도 "굉장히 큰 것"이지만 비핵화 협상에 나선 자신들에게는 "충분하지 않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의 '동결'이 아닌 '해체' 카드를 들고나와 사실상 제재해제 수준의 상응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로드맵 초기 단계에 다룰 시설의 범위와 속도 등을 더욱 높였을 거라는 관측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자리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변 시설 외에도 굉장히 큰 규모의 핵시설이 있다"며 "미사일이 빠지고 핵탄두 무기체계가 빠져서 합의를 못 했다"고 부연했다.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뿐만 아니라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 시설까지 의제로 다뤄졌음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해체' 카드를 내밀었다면 결코 적게 내놨다고 할 수는 없다. '해체'는 동결과 사찰, 불능화 등이 이뤄진 후에 진행되는 최종 단계다. 영변 핵시설을 무장해제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회담 결렬 후 "영변은 대규모지만 이것만을 해체하는 것은 미국이 원하는 모든 비핵화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협상 레버리지를 쉽게 버릴 순 없었다. 북한이 추가적인 비핵화를 해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노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함께 28일(현지시간) 하노이의 메리어트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2019.02.28.

【하노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함께 28일(현지시간) 하노이의 메리어트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2019.02.28.

북한과 미국은 장고의 시간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거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종전선언'을 조건으로 핵시설 신고'를 요구하며 교착 국면이 장기화되자 '조건부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꺼냈다. 이를 통해 '하노이 회담'을 개최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이 또한 회담이 결렬되면서 '영변-제재 완화' 프레임도 동력을 잃게 됐다.

이 때문에 북한은 더 큰 카드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물론 더 큰 카드를 낼 때 '경제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있는 미국이 '제재 완화'를 검토할 수 있을 가능성도 커지겠지만, 그동안 감췄던 핵 시설을 외부세계에 공개해야 하는 것은 부담이다. 그렇다고 시간을 오래 끌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핵-경제 병진노선을 버리고 새롭게 채택한 경제총력노선을 성공시키려면 제재해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게다가 오는 2020년은 노동당 창건 75주년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속도' 발언에 "시간이 귀중하다"고 말한 배경이기도 하다.

북한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지 11시간 만에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대미 메시지였다.

리 외무상은 "현실적 제안을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유엔 제재의 일부,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을 해제하면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 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에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이라고 협상 카드를 공개했다. 아울러 이번에 일부 해제를 요구했던 대북제재는 2016년 3월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 2270호부터 2017년 12월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97호까지였음을 분명히 했다.

리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영변지구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완전한 비핵화로의 여정에는 반드시 이러한 첫 단계 공정이 불가피하다.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또다시 '허들'이 높아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맞섰다.

리 외무상이 입장문 발표를 마치자 옆에 있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이례적으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최 부상은 '미국식 계산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미국의 협상 방식을 비판하면서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조미 결의에 대해 좀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 하는 이런 느낌을 제가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로 "한 레벨에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서두르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는 "선언문이 준비돼 있었지만 빨리하기보다 옳은 일을 하고 싶었다"며 '100%'를 언급했다. 김 위원장에게 100%를 가져오지 않으면 협상 테이블에 마주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는 관측이다.

【하노이=AP/뉴시스】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리 외무상은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오히려 영변 핵 시설 폐기 외에 '한 가지'를 더 요구했기 때문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9.03.01.

【하노이=AP/뉴시스】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리 외무상은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오히려 영변 핵 시설 폐기 외에 '한 가지'를 더 요구했기 때문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9.03.01.

전문가들은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린 셈이며 비핵화 허들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관측했다.

정영태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싱가포르 회담부터 (트럼프의 전술에) 말려들었다. 김정은이 풍계리 핵실험장, 미사일실험장 폐기, 영변까지 흘리면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재를 강화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트랙에 빠졌다"면서 "트럼프는 북한을 이런 식으로 제압을 확실하게 해놔야 한 단계 더 높은 곳에서 자기 입지를 더 구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범철 아산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이번 협상 결렬은 김정은이 더 내상을 입었다"면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매체들이 김정은의 2차 정상회담 소식을 보도했지만 결과가 잘 안 나오고 국제사회도 알게 됐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자들한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거래를 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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