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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밴드 해체와 1인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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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3-04 14: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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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아시안 체어샷', '장기하와 얼굴들', '피아'···. 활동을 중단했거나, 해체했거나, 해체를 앞두고 있는 걸출한 밴드들이다.

'밴드의 위기'의 증거라고 댄다면, 잘못 짚은 것이다. 밴드는 우리나라 대중음악 신에서 전성기를 누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앞둔 1990년대 말 서울 홍대앞에서 크라잉넛·노브레인·레이지본 등을 중심으로 펑크록 기운이 꿈틀대기는 했지만, 메인 스트림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라는 것이 어슴푸레 보였다. 같은 밴드여도 펑크뿐 아니라 브라스, 레게, 스윙, 로큰롤 등 세분화된 전문영역이 있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이 가능했고 한편에서는 지지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함께 뭉칠 수 있는 밴드 멤버들이 있었다.

특정 현상의 원인을 사회적인 이유에서 찾는 귀납적 추론은 해법이 아니지만, 답을 찾아나가는 데 보탬은 된다. 1인 가구의 증가가 그것이다. 4인 가족이 가장의 노동으로 밥 먹던 시대는 일찌감치 끝났다. 맞벌이로는 세 가족 부양도 힘들다.

밴드는 특출한 프런트맨이 등장해도 모든 멤버들이 먹고 살기에 벅차다. 행사무대에도 무거운 악기를 들고 가서 세팅을 해야 한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최근 5인 밴드에서 2인으로 재편한 어느 밴드가 떠오른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밴드 인지도를 높인 특출한 멤버에게 가정이 생겼다. 홍대앞 뮤지션 중에는 혼자서 컴퓨터로 기타, 베이스, 드럼 사운드를 만드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효율적이다.
 
밴드만 '헝그리 정신'으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다. K팝 아이돌 연습생, 대세인 힙합의 언더그라운 래퍼도 마찬가지다. 밴드 음악만 특별하게 대할 까닭은 더 이상 없다. 다만,모든 삶을 공유했던 밴드 얘기는 해야겠다.

홍대앞 터줏대감인 밴드 '허클베리핀'의 리더 이기용이 말했다. "밴드는 음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에요. 음악만 다루면 반드시 망합니다. 즐거운 것을 같이 하려는 자세, 태도가 음악을 공유하는만큼 중요해요."

바로 그런 잔치가 얼마 전 열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경록의 생일을 축하하며 함께 공연하면서 즐기는 '경록절' 파티다. 이날 인디밴드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를 술과 음악에 실어 날려 보낸다. 낭만에 한껏 취해도 좋다고 허락받은 날과도 같다.

밴드는 언제나 위기였다. 자포자기 않은 채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멤버들에게서 위기일지언정 종언은 아닌 이땅의 밴드를 본다.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삶을 나누는 그들처럼 가끔은 혼밥이 아닌 함밥, 함께 먹는 밥을 하자. 

문화스포츠부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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