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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재판청탁 금배지…사법정의 말할 자격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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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3-13 13: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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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나운채 기자 =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있는 서울 서초동은 한 많은 동네로 불린다. 억울하고 서럽고 분하다는 탄식이 오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주변을 걷다 보면 "공정한 수사와 판결을 원한다"는 목소리를 어렵잖게 들을 수 있다.

해는 바뀌지만, 말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최근 들어 목소리의 근원지가 이전과는 다른 모양새다.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처럼 똑같이 '공정'을 외치지만, 왼쪽 가슴에는 배지 하나가 영롱한 금빛을 내며 달려 있다. 국회의원들이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정치인 투기 의혹 수사가 공정치 못하다며 대검찰청을 찾아온 뒤 총장이 없자 항의 점거에 나섰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차기 대선 주자로 평가받던 유력 정치인의 형사재판 판결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대국민설명회를 열었다.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모두 "공정하지 않다"며 같은 목소리를 낸다. 과연 국회의원들은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는 문자 그대로의 '공정(公正)'을 외치고 있을까.

그간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의 대상이 되는 인물에 따라서 혹은 당론에 따라서 또는 정세에 따라서 입장을 바꿔왔던 그들이다. 어떤 사안이 얼마나 공정한지 여부는 그들의 입맛에 맞춰 바뀌었다.

더군다나 검·경 수사권 조정, 법관 탄핵안 등 중요 현안들이 국회 손에 달린 상황이다. 국회의원들이 검찰과 법원을 향해 "공정히 하라"고 외치는 것이 '흔들기'로 치환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최근 사법 농단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인 재판 청탁 의혹은 의구심을 더한다. 독립적으로 진행돼야 할 재판에 대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국회의원이 연루된 정황이 수사 과정에서 포착됐다. 모든 국민이 똑같이 공정하게 받아야 할 재판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의원들이 사법부에 본인과 관련된 재판 상황이나 재판부 심증을 물어봤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사실로 밝혀진다면 삼권분립 취지가 무색해질 심각한 사안이다.

향후 부정한 청탁이 단순 부탁으로 둔갑할지는 모를 일이다. 본격 수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반전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국민을 대표하는 자격을 가진 자들이 이런 의혹에 연루됐단 자체만으로도 심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국회의원들이 누군가를 향해서 공정을 외치기에 앞서 스스로 공정했는지를 돌아보길 권한다. 그 다음에서야 국민의 기준에 맞는 공정을 외쳐야 한다. 한 서린 국민의 애달픔을 보듬어주고 달래주기 위한 외침이어야 할 것이다.

 na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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