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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혁당 사건으로 맞춘 역사 퍼즐, 연극 '고독한 목욕'

등록 2019.03.15 10: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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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독한 목욕' ⓒ국립극단

연극 '고독한 목욕' ⓒ국립극단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빨갱이!"

2019년 3월의 서울역 앞 광장은 1960~70년대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레드 콤플렉스'를 앓고 있거나 이용하는 '태극기 부대'의 외침을 뚫고,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앉으면 이 외침이 귓가에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국립극단이 올해 첫 창작극으로 선보인 연극 '고독한 목욕'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현재가 맞물리는 퍼즐이다. 1960~1970년대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이 소재. 당시 중앙정보부가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을 결성했다'고 발표, 다수의 인사·언론인·교수·학생 등이 검거됐다.

현 서울역 옆 국립극단 자리에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수송대가 있었다. 기무사는 군사보안 지원, 방첩, 군 관련 첩보, 특정범죄 수사 등을 하는데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독한 목욕'은 작품 속 사실과 작품 밖 현실의 사실 등을 교차시키며 인혁당 사건을 환기한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너무 돌아가지는 않지만 신중하게 사건을 톺아보며 나간다.

극중 '송씨 아들'은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된, 과거 지식인이었으나 양봉을 한 아버지를 돌아본다. 사과, 집으로 돌아가는 벌꿀의 날개 소리, 오래된 책의 접힌 모서리 등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시를 낭송하듯 나열되고 돌연 고문에 시달리는 장면들이 불시착한 것처럼 삽입된다.
 
표면적으로는 한 가족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보편성은 개인으로부터 획득된다. 송씨 아들의 친구, 송씨의 지인들로 고통과 아픔은 확산되고 그것은 결국 사회의 슬픔이 된다.

사건의 직접적인 자장에서 벗어나 있는 젊은 극작가 안정민(32)은 이 아픔의 주변부를 매만지는 듯하지만, 결국 관객이 아픔을 마주함으로써 체험하게 만든다. 연극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로 제5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제39회 서울연극제 연출상 등을 수상한 연출가 서지혜의 세련된 연출은 인혁당 사건이 오래된 일이 아님을 웅변한다.
ⓒ국립극단

ⓒ국립극단

송씨 아들과 송씨는 마주한다. 극은 함부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예술이 실제를 넘을 수는 없지만, 실제를 마주볼 수 있게는 만든다. 잊힌 아픈 과거가 다시 기억된다.

무대 배경 뒷벽에는 공연 횟수가 거듭될수록 시인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문구가 한줄씩 추가된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고 시작하는 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등의 문구는 '고독한 목욕'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과 맞물린다.

국립극단이 차세대 극작가를 소개하기 위한 '젊은극작가전'의 세 번째 작품. 국립극단이 작년 시작한 창작희곡 온라인 상시투고 제도 '희곡우체통'을 통해 발굴된 연극이기도 하다. 제55회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남동진이 송씨 아들, 국립극단 시즌단원인 배우 이종무가 정치 공작에 의해 희생된 송씨를 연기한다.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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