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지식인'이라 불리는 남성들의 부족한 '성인지감수성'…어떻게 하나

등록 2019.03.21 11:52:16수정 2019.03.21 12:02:0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교수들 "정준영, 가해자이자 피해자"…여자를 조심해야"

지식·지위 관계없이 여성 신체 소비하는 남성문화 방증

주로 4~50대인 교수들, 지식에 비해 성 감수성도 떨어져

전문가 "그간 보호하기만 급급…가해로서 강력 처벌해야"

일각에선 "지식위주 성교육 아닌 공감 가능한 교육 필요"

【서울=뉴시스】윤해리 수습기자 = 19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의 '버닝썬 불법촬영 영상' 관련 부적절한 발언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2019.03.19

【서울=뉴시스】윤해리 수습기자 = 19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의 '버닝썬 불법촬영 영상' 관련 부적절한 발언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2019.03.19

【서울=뉴시스】구무서 기자 = 지난 2월 50대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 무죄 판결과 달리 2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고 법정구속 됐다. 최근 성매매 알선과 불법촬영 영상 유포로 논란을 빚고 있는 '버닝썬 사태'에 대해서도 4,50대 교수들이 강단에서 잇따라 망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남성우월중심 사회에서 성장해온 이른바 우리사회 지식인 그룹에 속하는 남성들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운동 이후 달라진 사회의 성 인식을 따라가지 못한 참사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교육계 안팎에서 비판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한국외대 교수가 강의 중 성매매알선 등 혐의로 입건된 가수 승리(본명 이승현)와 불법촬영 및 유포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을 두고 "공인이 일하는 게 힘들면 그런 게 분출구가 될 수도 있다.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라고 말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날 중앙대에서도 교양수업 중 교수가 "자기가 했던 일들을 카톡방에 올리지 않았다면 흠을 숨기고 잘 살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제보가 나왔다.

전날인 19일에는 서강대에서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며 망언을 한 교수를 비판했다. 대자보에 따르면 이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한 교수는 '버닝썬 영상'을 보지 못해 아쉽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우리 학생들은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정말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인이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연이어 나오자 교육계 내부에서도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 김용석 이사장은 21일 뉴시스에 "소위 지식인은 깨어있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학생들에게 성 관련 발언을 함부로 하는 걸 보면 지성인으로서 회의가 들 정도"라며 "답답하고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로 여성폭력 문제 전문가들은 성평등 의식이 부족한 남성문화를 꼽았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김여진 피해지원국장은 "지식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소비해왔다는 남성문화를 방증한다"며 "사회의 각계각층을 불문하고 의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교수사회에서는 교수들의 생애적 특징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주로 교수들이 4,50대인데 이들이 유년기 교육을 받았던 1980~1990년대에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않아 피해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전국여교수연합회 소속 한 교수는 "생각이 이미 고착화 돼 있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분들이 많다. 그 분들은 그 발언들이 자기에게 얼마나 끔찍하게 돌아오는지를 모르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교수와 학생의 구조적 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이영우 사무차장은 "그동안 교수들의 성 관련 부적절한 발언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해소가 안 되는 것은 대학 내 학생과 교수 사이 불평등한 권력구조 때문"이라며 "학생과 교수가 평등한 관계설정이 돼야 부적절한 발언이 나왔을 때 피드백이 확실히 되고 교수들도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의 망언이 주로 수업시간에 다수의 학생들을 상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발 방지가 시급하다.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이를 위해 한 목소리로 처벌 강화를 외쳤다.

김 국장은 "교수집단 사이에서 가해자가 나왔을 때 제대로 대처를 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보호하기에 급급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며 "불법촬영이나 비동의 유포까지만 가해가 아니라 그걸 소비하는 것까지도 가해다. 이러한 발언들도 가해로서 엄중히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여교수연합회 소속 한 교수도 "이런 발언을 한 교수들이 뜨거운 맛을 보지 못해서 그렇다"며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의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각 대학에서는 교수들에게 성 관련 온·오프라인 강의를 하고 있지만 강의 내용이 성폭력 관련 법률에 대한 지식 전달 위주여서 성 감수성과 관련된 깊이 있는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교수들의 분석이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김귀옥 공동의장은 "최근들어 대학에서 교수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지만 주된포인트가 성폭력 관계법률이라 지식차원에서는 알지만 깊이있는 성찰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그렇다고 현 상황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내 발언이 왜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지를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수들도 조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문화에 대해 생각을 바꾸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